오늘은 아빠가 참 많이 생각나는 밤이에요. 아빠, 아무래도 내가 가진 불안의 뿌리에는 아빠가 있나 봐요. 아빠와 나는 참 많이 닮았잖아요. 다정하고 잔인하고, 유머러스하고 냉담하고, 책임감 있지만 이기적이죠. 아빠, 아빠를 닮은 내가 참 좋지만 꼭 아빠처럼 살게 될까 봐 무서웠어요.
내게 아빠는 오답노트였어요. 아빠가 채우지 못한 것들, 저지른 과오들을 피하면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빠가 가진 좋은 부분들 사이의 결락들을 채우면 나는, 아빠의 좋은 버전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아빠는 나의 프로토타입이고, 다음 버전으로 내가 잘, 잘 살게 되며 그것이 엄마와 아빠를 기쁘게 할 것 같았어요. 제 나름대로의 효도였을까요.
아빠는 알죠? 나는 항상 필사적이고 자신만만했어요. 전 제 삶이 고금리 적금 같았어요. 제가 갈 길은 정확하고, 그 길은 반드시 고이율의 행복을 보장할 거라고. 나는 내 삶을 따박따박 채우는 게 자신 있었어요.
근데 아빠, 그게 아닌가 봐요. 삶이란 게 뭔가를 채워서 선형적으로 행복해지는 게 아닌가 봐요. 뭔가 채우는 것이 짠, 하고 행복을 가져준다는 믿음, 아빠의 결함들을 채우며 삶의 목적지를 자꾸 세워가던 것이 아니란 걸 자꾸 배워요. 아빠, 나는 뭔가 더 가지고 채우는 거 외에 나의 쓸모를 모르겠어요.
그래서 비움에 대해 생각하는 오늘, 가슴 한 복판에 칼이 꽂힌 것처럼 아려와요. 뭔가를 비우는 삶은 뭘까요, 아빠. 우린 결핍이 채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결핍을 비워내지 못해 아픈 사람들인가 봐요. 아빠, 나는 비워내는 삶이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