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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즈 Aug 08. 2019

물은 셀프 구원도 셀프

우울증 셀프 탈출기

10대 후반부터 20대 내내 우울증을 앓아왔고 그걸 또 치료한 전력이 있다. 사실 여기저기 말하고 다닐 좋은 일은 아니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 언질을 했더니 치료과정이나 방법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계셔서 그 앞 뒤 이야기를 이 참에 자세하게 써보려고 한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우울증이 심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중증 우울증을 겪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다소 예민한 기질의 10대 후반에서 20대에게서 경미한 수준의 우울증이 빈번하게 발병한다고 한다. 우울증인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지만 주변을 보면 알게 모르게 많이들 힘들어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아무래도 여성과 청년에게 부과하는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 보니 더 그럴 것 같다. 이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우울증 그거 남들도 다 겪는 거라고 유난 떨지 말라는 게 아니다. 내 경우는, 이 사실을 자각하고 나서 내가 유달리 예민하거나 한심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이 많이 힘들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원래 그런 거라는 뜻이다.


아무튼 나도 성장과정에서 특별히 힘든 경험은 없었지만 원래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기질이라 작은 상처도 크게 받아들였고 또 사춘기의 예민함이 더해져서 왜곡된 자아상이 형성되다가, 20대의 여러 경험들을 거치며 스스로 회복하기는 어려운 정도의 우울증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우울증이 있다는 자각도 없이 20대의 대부분을 보내왔는데 나중에 병원에서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받고 나서,  그 과거의 모든 것들이 우울증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춘기 시절 이후부터 그냥 내가 원래 예민하고 우울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특히 어려서부터 자존감과 자신감이 너무 없었는데 그렇게 된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굳이 그 과정을 다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자라다 보니 사춘기가 되면서 스스로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고 그래서 늘 마음속에서 뭔가가 나를 나락으로 끌어 내려서 스스로 좀먹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멋지고 화려한 성공, 혹은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늘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하하고 학대했다. 나는 너무 못나서 평범한 삶조차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채로 어영부영 스무 살이 되었다.


아무튼 어른이 되면 좀 나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자존감이나 자존심이 너무 없으니까 내면에 늘 결핍이 있는 상태였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으니 타인의 평가로 나 자신을 채워야 했고 그래서 친구나 애인에게 지나칠 정도로 기대고 그들의 평가에 매달렸다. 절친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 쉽게 흔들리다가 그 사람이 못 견디고 나를 떠나가면 갈피를 못 잡기도 했다. 그렇게 타인에게 기대면서 누군가 나를 구원해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20대 중반에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배신당하고 상처 받는 일이 생겼는데, 하필 어릴 때의 트라우마와 같이 엮이는 일이었다. 그때 약간 공황장애 비슷한 게 왔다. 학교를 도저히 갈 수 없었고 스스로에게 갇혀버린 기분이 들었다. 학원이나 시험을 신청해놓고 가지 못하길 몇 달이었다. 그땐 매일 죽는 생각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참담함에 내 목을 스스로 조르다가 죽는 걸 실패해서 하는 수 없이 하루를 보내야 했다. 비참할수록 살아갈 자격이 없는 스스로를 벌줘야 한다는 생각에 자해도 했고 멍자국이나 피를 보며 남아있는 자기애 때문에 스스로를 더 벌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더 우울해졌다. 하지만 살아갈 자격이 없는 주제에 죽을 용기도 없었다. 죽으려면 좀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당시엔 너무 힘들어서 그럴 의지도 없었다. 


지금 와서 다시 그때 감정을 복기하다 보니 다시 괴로움이 밀려온다. 과거의 내가 분명 비이성적이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 당시엔 사고가 그렇게만 흘러갔고 스스로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울증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저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옆에서 아무리 힘내라고 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줘도 그걸 받아들이는 나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바뀐 게 아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나를 동정해서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어 더 우울해질 뿐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되어온 사고방식과 자아 정체감은 주변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의 진심 어린 사랑 같은 걸로 극복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머릿속에 블랙홀 같은 게 있어서 언제나 희망적인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모두 집어삼키고 우울한 감정으로 침몰시켰다. 하루종에 그 생각에 매달리고 신경을 쓰니까 다른 일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과거와 현재의 감정에 발목이 잡혀서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게 되고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외부의 어떤 긍정적, 부정적인 자극도 결국 나의 비참함을 정당화시키는 수단화될 뿐이었다. 


하루는 이렇게 사는 내가 불쌍해서 혼자 펑펑 울다가 이 정도면 아무리 나 따위라도 우울증이 약간 있는 정도 아닌가 하는 자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죽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인생이 더 가망이 없으면 그때 죽자고 생각하고, 일단은 지금이 너무 힘드니까 상담실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때 다니던 대학 내의 상담센터가 무료였다. 그래서 예약을 신청했는데 다들 사는 게 힘들다 보니 예약이 밀려서 연락도 안 왔다. 상담센터에도 버림받았다며 또 한참을 울었다. 그때는 그것도 그렇게 서러웠다. 나에겐 기회조차 없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상담센터 앞에 찾아가서 무작정 상담 좀 잡아달라고 했고, 직접 찾아가니까 꽤 빨리 상담이 잡혔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 기간이 한 학기로 정해져 있었는데 상담 선생님이 몇 번 바뀌더니 꽤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이 상담을 받게 된 걸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엔 이왕 하는 거고 또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상담 선생님이 하는 말을 잘 따르려고 했다. 실제로 상담 선생님은 내가 신뢰할 만한 전문성을 보여주어서 믿을만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상담은 현재의 감정부터 시작해서 아주 근본적인 이야기까지 파고 들어갔다. 나는 내가 왜 어떤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는지 깨달았고 과거에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 그게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고 내가 사과받았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인셉션에서 꿈속의 아주 깊은 곳에 들어가서 생각의 단초를 바꾸는 것처럼, 나도 아주 옛날에 있었던 기억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스스로를 다시 들여다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내면의 응어리가 좀 풀렸고 자해도 그만두었다. 자해도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하면 계속하게 되는 거라고 해준 말이 참 위안이 되었다. 내가 한심하고 의지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원래 그런 거였다는 말은 나에게는 꽤 도움이 되었다. 내가 힘든 것도 내가 유별나서 그런 게 아니라 흔히 있는 일이었다. 나는 한심한 쓰레기가 아니라 그냥 조금 힘든 보통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다. 


우울한 감정에서 그럭저럭 벗어날 것도 같기도 한데 아니기도 하지만 전보다는 나아진 상태에서 상담을 끝냈다. 상담 선생님이 나보고 약물 치료도 권유하셨는데 나는 그때는 병원에 가는 게 겁이 나기도 하고 스스로 극복해보고 싶은 마음에 사양했었다. 뭐, 그땐 그럭저럭 괜찮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상담이 끝나갈 무렵, 상담 선생님은 연애를 하라고 하셨는데 안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일이 잘 안 풀려서 어쨌든 안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만약 겨우 나아가는 과정에서 연애를 한다면 또 남에게 기대게 될 것 같다고. 그런 건 싫었다. 나는 불확실한 타인에게 기대어 완전해지기보다는 혼자 잘 서는 법을 배우고 싶어 졌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계속 내 결핍을 타인으로부터 채우려고 했지만 끊임없이 공허를 느꼈다. 




또 한동안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기를 1-2년 정도 지났을까, 이런저런 일들로 다시 예전처럼 격렬한 우울이 찾아왔다. 그래도 한번 경험이 있었던 터라 속절없이 휘말리진 않았고 초기 단계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또 자해를 하다가, 이대로라면 옛날로 돌아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고 어차피 또 상담을 받아도 다시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았다. 상담 더 받아도 이제 더 할 얘기도 없을 것 같고 이젠 우울에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아서 이번엔 병원에 갔다. 


나름 수소문해서 의사 선생이 빻은 소리 안 하고 그럭저럭 괜찮다는 곳을 찾아갔다. 첫날엔 심전도랑 뇌파 같은 걸 검사하고 간단한 상담을 하고 심리검사도 받았다. 의사는 우울증세가 있으니 약을 먹어보자고 했다. 약은 약국에 가지 않고 병원 안에서 처방받을 수 있었고 2주마다 새로 약을 받아갈 수 있었다.


다들 핵심적으로 궁금해하는 사항을 먼저 써보자면, 난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실비보험도 가입된 상태라 아쉬울 게 없어서 그냥 의료 보험 처리를 했더니 검사비는 6만 원이 나왔다. 약 값은 그 후로도 2주 치에 만원 넘는 금액으로 꾸준히 나왔다. 나중에 연말 정산할 때 의료비 공제항목을 보니 병원 이름은 일부 가려져있었다. 나중에 다른 회사에 취직할 때 회사 측에서 신체검사 기록을 요구했지만 정신과 기록을 딱히 요구하진 않았다. 


내가 먹는 약이 뭔지 물어봐서 대답을 들었는데 어려운 말이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ㅋㅋ 항우울제랑 항불안제와 뇌신경 개선제(??)라고 했던 것 같다. 약 종류는 3가지였고 하루에 한 번씩 자기 전에 먹었다. 의사는 식욕부진의 부작용이 있어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거라 했지만 사실 나는 식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예전처럼 잘만 먹고 다녔다.


약을 처음 먹었을 때는 하루 종일 너무 멍한 기분이 들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근데 일하기 어렵고 스스로 좀 바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서 며칠 후에 바로 병원에 가서 약을 줄이거나 바꾸면 안 되냐고 물었다. 사실 이 단계에서 불편함 때문에 약을 그냥 끊는 사람이 많다는 얘길 들었는데 정신과 약은 절대 임의로 끊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게 있어서 의사랑 얘기부터 해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의사는 내 말을 듣더니 약 종류랑 복용량을 수정해 주었고 몇 번 조율을 거치고 나니까 좀 괜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복용한 후 처음 몇 주간은 평상시에도 다소 멍한 기분이 들었다. 한 달쯤 지나니까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생활이 가능했다. 약 먹기 전과 다른 거라고는 야한 생각을 덜 한다는 거랑 잠을 좀 더 많이 잔다는 것 정도였다. 약 때문에 술도 좀 자제해야 했다. 


의사는 내가 물어보면 대답을 해줘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는데, 약이 서서히 작용하면서 뇌신경기능을 조절하게 된다고 했다. 몇 달 지나니까 스스로 변화가 느껴졌다. 가장 크게 느낀 건 바로 쓸데없는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였다. 그냥 평소처럼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일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가 우울한 생각으로 깊게 빠지는 사고의 패턴이 늘 있었는데, 약 복용 후부터는 어느 선에서 그 생각이 딱 멈췄다. 굳이 더 생각할 필요도 안 느끼게 되었다. 처음엔 내 생각이 짧아진 건가, 내가 덜 예민해진 건가 과거의 나를 잃은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정도의 예민함이나 깊은 생각은 사실 내 삶에 별로 필요 없는 부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예술 전공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예민하게 살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되니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도 전보다 편해졌다. 한 6개월쯤 지나고, 그 상태에 적응하게 되었을 즘에 딱 생각했다. 젠장, 진작 약 먹을 걸 괜히 개고생 했네.


결국 지난 10여 년의 괴로움들이 그냥 뇌신경물질의 과다 분비 같은 현상으로 일어났던 거였고 약 먹고 치료받으면 금방 마음의 평안을 되찾는 종류의 일이었다는 걸 깨닫자 굉장히 마음이 편해졌다. 나 자신의 잘못이나 모자람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던 거였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우울하지 않은 상태의 '일반적인 기분'이 뭔지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기분은 사실 만성 우울증 상태였던 거였는데 사춘기 때부터 계속 그 상태였으니 정상인 기분을 겪어본 적 없어서 문제의식도 없었던 거였다. 남들은 여태 이런 기분으로 살았다고 생각하니 억울할 정도였다.


상태가 꽤 괜찮아진 후에도 혹시나 약을 마음대로 끊으면 행여 예전으로 돌아갈까 겁이 나서 의사와 상의해서 복용량을 점차 줄여가면서도 한동안 먹었다. 2년 넘게 먹으면서 양을 점차 줄였다가 마침내 정리를 했다. 그 후로는 아직 병원을 찾지 않고 있다. 


그 후로도 물론 다시 우울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지만, 생각보다 금방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다른 기분이 뭔지 아니까.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생각에 빠지지 말고 다른 기분 좋은 하면서 의식적으로라도 벗어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우울을 그냥 놔두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이제 마음의 여력이 있으니 굳이 생각이 옛날처럼 자기 파괴적으로 생각이 흘러가려고 해도 정신줄 붙들고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남 탓을 해보거나, 혹은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해 가면서 다시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훈련도 내적으로 많이 했고. 그걸 반복하다 보니 또 사고방식이나 가치관도 점차 변하게 되었다. 요즘엔 어렵지 않게 불필요할 정도의 우울한 생각에서는 금방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상태가 얼마나 갈지도 모르겠고, 나중에 또 큰 충격을 받거나 삶이 힘들어지면 다시 우울이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는 나름대로 과거의 우울한 상태에서 꽤 많이 벗어난 것 같다. 또 그렇게 쉽게 과거의 우울 블랙홀로 다시 빨려 들어가지는 않도록 나름대로 안전망은 잘 세워가고 있다. 


하지만 우울했던 내 과거가 싫은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현재의 나를 형성시킨 내 마음과 삶의 일부분이다. 평생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또 몰랐을 힘들었던 감정들을 겪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 또 다른 사람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또 그런 과거 동안 생각했던 많은 예민했던 감각들이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 바깥의 것으로 나를 구축하는 것이 아닌 내 안의 에너지로 나 자신을 단단하게 세우는 성장의 과정을 어쩌면 남들보다 더 격렬하게 겪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남들은 그냥 무난하게 지나갈 일지도 모르는 과정에 시간도 많이 썼고 돈도 많이 썼지만 나는 나의 사정이 있었던 탓이니까. 또 상담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다루는 법을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또 힘든 일이 닥쳐와도 적어도 외부적인 이유만으로는 내 멘탈이 쉽게 흔들리진 않을 생각 한다. 


박사과정 중에는 특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사라져 멘탈이 흔들 일 많은데, 나는 그래서 우울증을 잘 털어낸 후에 유학 오게 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내 능력치를 구분 짓고 심적으로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과거에 공부할 때보다 몸은 힘들고 스트레스도 받긴 하지만 아주 깊은 속 마음은 오히려 흔들림이 없다. 박사과정이 내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이거 아니면 다른 거 하면 된다고, 박사과정에 실패하게 되더라도 그것도 내 삶이라고 일부러라도 더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과정 내내 연애는 안 했고 타인에게 감정적으로 크게 의존하지도 않았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난 남에게 딱히 기대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낸 것 같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구원은 셀프'를 실천한 셈이다.




사실 나는 내가 꽤 빨리 치료한(?) 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의지도 있었고 치료할 때엔 여러 가지 상황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내가 그냥 혼자 상담받고 병원 가는 동안 모부님이 어느 정도 알게 되긴 했지만 갈등도 크진 않았다. 사실 상담을 오래 받고 우울증 약을 오래 먹어도 쉽게 치료가 어려운 분들이 많은 걸 안다. 그건 그분들 잘못이 아니라 그분들이 나와 다른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사례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일반화해도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남에게 조언하거나 영향을 끼치고 싶지는 않고 누군가 망설이는 상황이라면 참고만 하시길 바라고 써봤다. 읽는 분들도 이 점을 참고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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