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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즈 Jun 09. 2024

현재진형형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 실패한 지 10년째


나름대로 미니멀라이프를 한 지 10년 정도 되어가는데, 아직도 완전히 실현하지 못한 이야기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추구하는 건 맞으니까 '미니멀 라이프 추구형' 인건 맞다!

사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시시콜콜하게 뭘 버렸다부터 어떻게 생활하는지 사진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많은데, 장기적으로 이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미니멀 라이프 시작하기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물건을 잘 정리하고 잘 버리는 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1년에 한 번씩은 책상 정리를 하면서 사용하지 않는 자질구레한 문구 용품들을 정리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사람 성향은 못 속이는 것 같다. 그러던 차에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사사키 후미오 씨의 책을 보게 되면서 완전히 자극을 받았다. 


당시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라이프 스타일을 형성할 무렵이었다. 특히 1년 동안 쓰지 않는 물건은 평생 쓰는 물건이다!라는 말에 깊게 감명을 받았다. 처음엔 1년은 좀 겁이 나서 3년 정도 쓰지 않은 물건이나 옷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많은 미니멀 리스트들이 그러하듯이 버린 물건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것들이 없어도 내 생활이 잘 유지된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버리는 일에 점점 거침이 없어졌다. 가족들이 버리는 병에 걸렸다고 놀릴 정도로 다 갖다 버렸다. 대학시절 전공책부터 어린 시절에 친구들에게 받았던 편지나 쪽지들도. 그때만 해도 그렇게 다 갖다 버리면 내 생활이 단출하고 깔끔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그때 당시에 내가 간과했던 점이 무려 '몇 가지'나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이 호더다!


내가 버리거나 정리하는 과정을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쓸만한 물건을 발견하면 다 다른 곳으로 가져가서(주워가서) 잘 넣어놓는다는 걸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결국 나의 물건 처분은 그냥 내 책상에서 동생의 책상으로 옮겨가고, 내 옷장에서 어머니의 옷장으로 옮겨간 것에 지나지 않은 행위였다. 심지어 그 몇 년 동안 그걸 쓰지도 않으면서! 몇 년 만에 집에 돌아와서 동생의 책상에서 내가 예전에 처분했다고 굳게 믿었던 파우치 따위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결국 그걸 다시 재처분 하거나 용도를 찾아주던가 내가 도로 가져가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나는 내돈내산 내 물건도 가족들 몰래 처분해야 하는 비밀결사 미니멀 리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내 물건 처분하고 나면 가족들한테 혼이 난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일단 집에 들어오면 집안의 자산이라는데 내 의견은 아니다.)


그래도 10년 가까이 열심히 물건을 갖다 버리고 적어도 내 방 안은 쾌적하게 유지하고 실제로 짐이 줄어든 걸 생활하는 모습으로 보여주면서 또 틈만 나면 미니멀 라이프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더니, 변한 가족 구성원도 있긴 하다. 어머니도 30년이 넘은 옷이나 장신구들은 처분을 좀 하기 시작하셨다. 아직 10년 넘은 옷들은 남아 있는데 아직 멀쩡하다면서 집착을 놓고 계시진 못하시지만. 



나는 오타쿠이다...


덕질과 미니멀 라이프는 함께 할 수 있을까? 다들 그건 안 된다고만 한다. 나도 처음에 고민을 많이 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한다는 사람이 최애 굿즈를 이렇게 수집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그러다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생활을 단출하게 하는 것과 최애의 굿즈를 수집하는 건 다르다고. 궤변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식이다. 왜냐면 최애의 굿즈는 오로지 나의 만족과, 전시를 위한 목적이지 생활 용품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가지고 있는 물건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품과, 정서적 만족을 위해 수집하는 덕질 물품. 다행히 나는 옷이나 장신구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생활용품에 해당되었고 가짓수를 줄이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일상적인 물품들은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처분을 하면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제 덕질용 굿즈들이다. 나는 20년 넘게 여러 장르를 가열하게 덕질하며 깨달은 바가 있어 굿즈를 구매할 때도 나름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일단, 공식 굿즈는 구매한다는 원칙. 공식 굿즈를 놓치는 건 오타쿠로서 자격 상실이다. 그리고 공식 굿즈는 나중에 탈덕해도 중고 시장에서 되팔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영구 소장의 의미보다는 장르에 후원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이 역시 나름대로의 합리화일 수 있겠지만, 이 원칙은 이제까지 미니멀 라이프 생활과 그럭저럭 잘 융합이 되어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2차 창작 굿즈, 혹은 팬 창작 굿즈들이다. 덕질을 하다 보면 팬 창작 2차 굿즈들이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것들을 전부 다 구매할 필요는 없다는 걸 어느 날 깨달았다. 그걸 다 구매할 수도 없을뿐더러, 나중에 처분도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정말 갖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구매하거나, 다시는 버리지 않을 각오가 생긴 것들만 구매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장르를 탈덕하게 되거나 일정 시일이 지나면 지인이나 늦덕인 분들께 다 나눔을 해서 처분한다. 그리고 내가 굿즈를 만드는 일이 생겨도 재고를 절대 남기지 않을 정도로 소량만 제작하거나 아니면 나눔으로 다 뿌려버린다. 


그리고 덕질의 끝은 바로 탈덕. 좋아하는 마음은 언젠가 식게 된다. 나는 초딩 때부터 덕질을 해왔기 때문에 영원한 마음은 절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탈덕했다는 걸 깨닫게 되면, 굿즈를 일단 정리해 둬서 유예 기간을 두었다가 완전히 마음이 정리가 되면 상태가 좋은 굿즈들은 미련 없이 처분한다. 특히 되팔 때는 원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나눔을 하거나 저가에 내놓으면 금방 처분할 수 있다. 나중에 뒤늦게 팬이 되신 분들께 팔게 되면, 나보다 더 많이 굿즈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판매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내 과거의 최애(굿즈)도 방 한 구석에서 미련만 남겨두고 썩는 것보다는 새로운 팬을 만나서 멋진 모습으로 관리받는 편을 더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기적으로 구 장르는 굿즈 처분을 해줘야 또 지금 좋아하는 새로운 최애의 새로운 굿즈를 사다 모을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내 소장 물건에서 굿즈의 영역은 어느 정도를 벗어나지 않게 된다. 



내가 변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미니멀 라이프를 가장 방해하는 것은 바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 삶, 나 자신이다. 직장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한 지역에서 지내는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나름대로 많은 변화가 있을 터인데,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생활 패턴이 극단적으로 변해왔다. 이 말인 즉, 나에게 필요한 물건도, 그 장소도 극단적으로 바뀌어왔다는 뜻이다.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수많은 주방용품 및 기타 살림 용품을 구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해외로 출국하게 되면서 전부다 새로 사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전에 샀던 것들은? 부모님 댁으로 가게 되어 짐꾸러미가 된다. 해외에서는 다른 문화 때문에 다른 생활 용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기간의 해외 생활을 또 정리하고 부모님 댁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물건들은 또 어떻게 되는가? 열심히 처분을 했는데도 그냥 짐으로 남게 된 것들이 있다. 이사를 많이 다니면 오히려 짐이 줄어든다고 한다는데,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이 필요했고 과거의 것들은 필요하지 않아서 열심히 처분해야 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동안 내 몸도 많이 변했다.(살이 쪘다는 뜻이다.) 오래오래 입을 각오로 샀던 옷들을 더 이상 입지 못하게 되면서 새로운 체형에 맞는 옷을 사게 된다. 그래도 언젠가 살을 뺄 줄 알고 옷을 남겨두었지만 그건 미련이 되어 짐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예전 옷들을 다 처분했더니, 또 몇 년 후에는 다이어트가 잘 되어서 큰 옷들이 안 맞게 되어서 다시 옷을 사게 되었다. 이러면 또 살이 쪘을 때 입던 옷들이 남게 된다. 이게 몇 번 반복되 자, 옷을 쉽게 버리기는 어려워졌다. 유예 기간을 두고 보관하는 사이에 미니멀 라이프는 멀어지게 된다. 한 가지 더, 더운 지역에서 살다가 추운 지역으로 가거나, 반대의 경우에도 안 입는 옷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이런 경우에도 결국엔 처분을 해야 하지만, 처분에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내 미니멀 라이프가 아직까지 실패하는 이야기를 해보았다. 나름대로 사정이 많다.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았다. 그래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드는 물건은 끊임없이 처분한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버리지 않았다면 이제까지 내가 가진 짐들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의 쓰레기 문제도 있기 때문에 물건을 무조건 버리지는 않고, 기부하든가, 중고판매를 하든가 다른 용도를 찾아내서 재활용한다. 그래서 처분은 사실 품이 많이 드는 행위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다 내가 물건을 쉽게 구매한 것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하며 처분에 더 품이 드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물건을 구매할 때 더 신중하려고 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은 아닌지, 가지고 있는 물건을 활용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을 고민하면서. 그래서 나 자신을 아직 차마 미니멀리스트라고 규정할 수는 없어도, 일단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실 이런 삶의 양식은 굳이 미니멀 라이프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으로 물건 가짓수를 줄이지 않아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작고 귀여운 부동산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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