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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Dec 14. 2020

코로나 시대의 불꽃놀이

그 모든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대신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 창문을 위로 올려도 자동차 하나 밖을 지나지 않고, 얇은 벽에 귀를 대보아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무엇을 하든 오늘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가 양성이든 음성이든 오늘 밤 이 방 안에는 오직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당연한 말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그렇게 작은 파도로도 속이 메스꺼워질 정도로 고요한 밤이다.


현재에도, 그리고 잠이 들기 전까지의 짧은 미래에도 어디 한 곳 붙잡을 곳이 없다면 과거 저 멀리로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 베개에 턱을 괴고 침대에 엎드린 채 여름 7월 부근을 향해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 본다. 바닥의 라디에이터로부터 올라오는 열기가 매트리스 안에 갇히고, 뜨거운 공기와 함께 떠오른 눈에 불꽃이 맺힌다. 창 밖 건물 오른편 저 멀리에서 터지는 불꽃이 보인다. 그 뒤를 총알처럼 따라오던 펑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국에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독립기념일에만 불꽃놀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름 내도록 밤이 되면 남서쪽에서 누군가가 불꽃을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불꽃은 늘 같은 방향에서 올라왔다. 밤에 홀로 의자에 앉아 컴퓨터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문득 밖에서 소리가 들렸고, 침대로 몸을 던져 창문 밖을 바라보다 보면 곧 불꽃을 볼 수 있었다. 밖에 나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자신이 저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든 주위에 알리려는 듯 불꽃은 집요하게 터지며 주변에 소리를 남겼다. 몇 시간이고 계속 잔향이 울렸다.


어쩌면 저곳에 사는 누군가도 세상의 조용함을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새까만 하늘 위로 떨어져 아무 흔적도 없이 삼켜질 것이 두려워 아주 잠깐이나마 밝은 발판을 머리 위에 두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잠시나마 주변을 이해할 수 있는 소리로 채우고 싶었을 것이다. 지수함수, 자가 격리, 10만에 가까워지던 일일 확진자 수, 그리고 마스크에 가려져 웅얼거리는 소리로 들려오는 그 모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잠시 잊어버리고 그 대신 하늘에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갈 불꽃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얼마 걸리지 않으면서 끝난 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뇌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불꽃이 올라오지 않는다. 집 안에 갇혀 밖을 향해 구조 신호를 보내던 시간은 지났다. 여름에 비해 특별히 나아진 것은 없지만 우리는 밖으로 끄집어내졌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껏 외로워할 자유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일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오늘 밤에 불꽃을 쏘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끝을 내지 못해 응어리진 감정이 일상의 지겨움과 한데 뭉쳐져 주위를 맴도는 백색소음이 되고, 글을 끝마치기를 주저하는 작가가 쓴 문장들처럼 그저 한없이 이어져간다. 뇌는 백색소음에 곧 적응하고, 20만 명을 넘어버린 일일 확진자수에서는 더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불꽃놀이는 끝났다. 나는 다시 출근을 한다. 지난 이야기에 아무런 결말도 내지 못한 채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취미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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