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와 7위의 대결이지만 페퍼의 파이팅 덕분에 언제나 흥미진진한 게임이지요. 게다가 오늘은 이보네 몬타뇨라는 현대건설의 새 외국인 선수가 첫 출전 할 것으로 예상되어 기대가 더 큽니다. 과연 현대건설의 외국인 선수는 야스민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페퍼의 현대건설 전적은 4패, 이번 시즌에 한 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최근 5경기 중에서 3연패 중이기도 하고요(1승 4패). 하지만 현대건설도 썩 좋지는 않습니다. 2승 3패. 오늘 몬타뇨 선수가 어떻게 해 줄 지에 따라 5라운드 남은 경기, 6라운드의 향방이 대충 점쳐질 것도 같습니다. 게다가 현대건설은 김연견 선수가 없다는 것도 큰 약점입니다. 수비의 중심을 책임지는 선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수비가 예전 같지 않을 겁니다.
득점, 공격성공, 후위공격, 블로킹, 서브, 세트, 리시브, 디그 어느 기록 하나도 페퍼가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수치 상으로는 오늘도 어렵겠지요. 다만 20점 넘어 범실 수는 페퍼가 적습니다. 8개 차이지만, 그래도 적은 건 적은 거니까요.
니아리드와 한비 선수가 컨디션을 최대한 끌어올려주고 박경현, 박은서 선수가 윙공격수로서 10점 대 이상만 올려주면 해 볼 만한 경기일겁니다. 지에스칼텍스 전에 출전하지 못한 오지영 선수도 벼르고 있겠지요. 선수층이 얇은 페퍼로서는 다른 선수들의 파이팅을 기대하기가 좀 어렵지만, (어르헝 선수 빨리 나아라) 왜, 그런 응원문구도 있잖아요. “내가 페퍼를 선택했으니 가시 밭길도 같이 가겠다.”라고요. (이게 아닌가?) 특히 20점 넘어 후반에 범실을 더 줄이고 집중력을 발휘하면 현대건설이라고 어려울 것 없습니다. 오히려 부담감은 현대건설이 더 많을 테니까요.
본게임
봄배구용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페퍼는 예상했던 것처럼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20점 이하로 끝낸 세트가 하나도 없었고 그나마도 후반까지 모두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쉽게 끝낸 세트가 없었으니까요. 1세트 지고 2세트 이기고 3세트 지고 4세트 이기고 5세트로. 가장 재미있는 배구 게임 스타일입니다. 역전인 데다가, 심지어 꼴찌가 1등을 잡았으니까요.
역시 불안한 건 현대건설이었습니다. 김연견도 없고 아무리 잘하는 외국인 선수가 왔다고 해도 훈련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시차 적응이나 되었을지 몰라요) 불안할 수밖에 없지요. 반면에 페퍼는 컨디션이 아주 좋았습니다. 니아리드는 오늘 완전 폭격기였어요. 블로커의 손 끝 위에서 공을 내리찍어 상태방 코트에 쉽게 꽂았습니다. 공격점유율 49%에 성공률 40%. 점유율에 비하면 아주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려 36 득점. 오늘 MVP가 되어도 충분한 성적이었는데 아깝게도 최가은에게 밀렸어요.
오늘의 히어로 최가은 선수, 15점 중에서 7점을 블로킹으로 올렸습니다. 서브 에이스도 2개나. 한비 캡틴도 15 득점, 경현 선수도 10 득점으로 오늘의 승부에 힘을 보탰어요. 현대건설은 이다현이 19점으로 최고점을 기록했는데 윙 스파이커가 아닌 미들 블로커가 최고점을 올렸다는 점에서 현대건설 아포짓과 아웃사이드 히터들은 반성해야 할 겁니다. 몬타뇨는 그 와중에도 13 득점을 올렸는데, 컨디션만 회복하면 만만한 선수가 아닐 것 같아요.
매 세트마다 숨을 죽였습니다. 두 팀 모두 중요한 공격 시점에서 서브 범실을 내 스스로 맥을 끊어서, 팬들의 마음을 애타게 했어요. 아유, 안돼, 저런, 또야… 부정의 감탄사들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오늘은 간 큰 선수가 많은 쪽이 이길 거야, 하는 확신이 들더군요.
5세트 승부의 분수령은 12:12 동점에서 상대의 기습을 찌른 이고은의 패스페인팅이었습니다.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도 상대 코트의 빈 곳을 정확히 보고 밀어 넣었지요. 간 큰 이고은. 기습을 당한 현대건설은 당황했고, 이한비의 스파이크가 블로커 터치아웃이 되면서 14:12, 고예림의 공격 범실로 15:12. 그렇게 치열한 경기가 막을 내렸습니다.
코트로 달려 나간 페퍼 선수들의 얼굴은 금세 울상이었습니다. 억지로 참는 이경수 감독대행의 표정도 나왔고요, 창피하지만 저도 울었습니다. 하이라이트 꼭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현대건설은 이번 패배로 큰 충격을 받았을 거고 만일 현대건설이 우승을 놓친다면 이번 경기를 졌기 때문일 겁니다.
니아리드 정말 멋졌어요. 무시무시한 점프를 이제야 보게 된 게 너무 아쉽네요. 남은 5, 6라운드 오늘처럼만 치러주길 응원합니다. 복덩이 한비 캡틴도 잘했고 서브 미스 없던 이민서도 잘했고 범실 하나 없이 경기를 치러낸 MVP 최가은, 자신감을 보여준 박경현, 그리고 온몸을 날려 수비의 균형을 잡은 오지영, 모두 모두 멋진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