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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Feb 18. 2023

여인의 향기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된 인생의 향기

이십 대 후반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어쩌라고? 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다지 영화광이라고 할 수 없는 나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봤는데, 차라리 007이나 빌릴 걸, 틀림없이 그런 마음이었을 거다. 오만하고 짜증스럽고 거칠고 술에 취한 꼰대(그땐 이런 말도 몰랐는데) 이야기를 보다가 나중에 개과천선하는구나, 그런데 이게 뭐야? 했겠지.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를 잊을 수가 없는 거다. 걸핏하면 등장하는 그 탱고 장면 때문에. 그 음악 때문에.


앞뒤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서, 그래도 그 유명한 탱고 씬이나 한 번 더 보자 하는 마음으로 넷플릭스에 올라온 여인의 향기를 클릭했었다. 그런데 첫 장면은 잘 생각이 안나서 아니, 어디서 이런 일진 고삐리들이 나오는 영화가 탱고와 연결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 무렵, 그 탱고 씬 조차도 극에서 지나가는 에피소드였다는 걸 알면서 나는 사실 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의 본질이 뭐지? 그러나 극이 전개되면 될수록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아, 뭐랄까 그때는 하나도 모르겠던 프랭크 슬레이드의 감정이 왜 이렇게 가슴에 쏙쏙 와 닿는지. 왜 프랭크가 그렇게 외로우면서도 아닌 척 했고, 결국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경험들을(어쩌면 겪어보지도 못했을) 누려가며 마지막엔 머리에 총을 대야 했는지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기쁘면서도 슬펐다고 해야 할까.


나이가 들면 동년배 친구도 필요하지만 때묻지 않은 청년 친구가 필요하겠구나, 내가 뭔가를 가르칠 수 있으면서도 내가 배울 수 있는. 인생은 아직 남았고 배울 건 아직 많은데, 나 혼자 모든 걸 겪은 것처럼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겠구나.


가진 걸 톡톡 털어 고급스러운 여행을 한 번 가봐야겠다, 고 생각은 하지만, 어쩌랴, 가진 것이 이미 마이너스 통장인 걸. 마이너스를 막고 나면 다시 마이너스를 내서 평소엔 쳐다 보기만 했던 호텔과 우아한 정찬을 먹을 수 있는 식당과 혼자서 전세낸 바에 앉아 마지막 잔을 토닥 거렸으면 좋겠다. 아직 나는 프랭크보다 시간이 조금 더 있는 것 같으니.


ps> 그나저나 알파치노의 탱고 파트너였던 개브리엘 엔워가 번노티스의 피오나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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