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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pr 28. 2016

위스키사워

흑백영화 속에서 위스키사워를 마시다

“나도 하루의 일을 마쳤으니 라시에나가로 차를 몰고 가서 루디의 바비큐 식당으로 찾아갔다. 나는 지배인에게 이름을 말한 뒤 바 의자에 앉아 자리 안내를 기다리며 위스키사워 한 잔을 앞에 두고 마렉 웨버의 왈츠 음악을 들었다.”

- 레이먼드 챈들러 / 기나긴 이별, 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있어 삼성동 바 배럴의 장점은 충분하다. 게다가 오래 알고 지난 바텐더가 있어 내가 술 마시는 스타일을 알아준다는 것도 즐거움이다. 바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과 두 번째로 배럴을 찾으면서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바텐더는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의 주문을 잘 받아줬고 덕분에 술자리는 더욱 즐거웠다. 


전작이 있어 마지막 잔을 마실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에 바텐더가 권한 위스키사워는 거절하기 힘든 잔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라프로익을 베이스로 쓴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워의 즐거운 새콤달콤과 라프로익의 기분 좋은 매캐함이 식도를 타고 흘렀고, 라프로익의 터프한 향이 코를 타고 올라왔다. 아, 맛있지만 더 마시면 죽을 것 같아. 

라프로익 10년을 베이스로 한 삼성동 바 배럴의 위스키사워

위스키사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나긴 이별에 위스키사워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찾아보니(전자책은 찾기가 진짜 좋다) 바비큐 집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식전 주로 마셨다는 거였다. 아놔, 라프로익은 스테이크 하고도 잘 어울리는데. 예전 부처스컷에서 스테이크 시켜놓고 라프로익 마시던 생각이 났다. 부처스컷에 있던 그 싹싹한 바텐더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마지막으로 필립 말로가 들었다는 마렉 웨버가 궁금해서 유튜브를 뒤져 봤다.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모노톤의 깽깽거리는 오케스트라 소리가 1950년대 흑백 영화 속으로 나를 끌고 갔다. 흑백이 어울리는 세상은 여전히 존재하는 법이다.

마렉 웨버가 나를 흑백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바 #배럴 #위스키사워 #기나긴이별 #라프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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