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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r 29. 2023

스토리에 대해서

세상 모든 이야기가 스토리는 아니다  

나는 브런치를 좋아했다. 어정쩡한 시간에 어정쩡하게 먹는데 이상하게 여유로워서 즐거웠다. 이런 브런치를 딴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도 좋아했다. 브런치 초기부터 술 얘기, 바 얘기를 좀 쓰다가, 중간에 한 4년 쉬고 배구 얘기를 쓸 수 있어 좋았다. 휴면 계정이니 뭐니 해서 자르지 않아서 좋았고, 브런치라는 이름에 담겨 있는 자유와 로맨틱과 삶에 대한 저마다의 목소리가 좋았다. 스토리도 있었고 아닌 것도 있었지만 나는 구독하는 글에는 좋아요를 아끼지 않으려 했다. 좋았으므로. 


그런데, 브런치를 브런치스토리로 바꾸겠단다. 카카오스토리, 티스토리와 합쳐 작가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브런치 스토리로 바꾸겠단다. 아니, 뒤에다 스토리라는 이름만 붙이면 세 가지 서비스가 저마다의 가치를 갖게 되나? 게다가 존재감 마저 희미한 카카오스토리를 거기에 욱여넣는 것은 무슨 전략인가. 카카오스토리 담당자를 살리기 위한 것인가?


오래된 브랜드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브런치. 얼마나 정겹고 입에 착착 붙는 이름인가. 여기에 올라오는 글은 수다여도 좋고, 문학이어도 좋고 배구 중계에도 좋고(내 거라 그런 건 아니다), 술 얘기를 쓸 수도 있고 전문 정보를 쓸 수도 있다. 스토리가 아닌 것들이 많고 작품은 스토리를 상회하는 개념이다. 카카오는 브런치에다가 스토리라는 이름을 붙여 세 가지 국밥을 만들려는 모양인데 나는 영 별로다. 돌림자도 아니고 - 요즘엔 자녀들 이름에다도 돌림자 안 쓴다 - 이 무슨 전근대의 사고방식인가? 


뭐, 그렇다고 브런치 스토리를 탈퇴할 생각은 없다. 써둔 글도 아깝고, 여기서 글 쓰기가 제일 편하다. 그리고 여전히 이름만 빼면 앞으로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 브런치를 출범할 때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존중하겠다는 마음이라면 스토리를 붙이는 것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여기서 이런다고 해서 이름을 바꾸지는 않겠지. 하다 못해 조금이라도 광고가 안 나오면 가차 없이 서비스를 닫아버리는 플랫폼 기업의 특성을 모르지 않으니, 징징대는 대신 차라리 잘했다고 박수를 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고. 


그래서 이건 나의 하소연이다. 스토리가 절대 아닌. 아니 봐봐요. 아이돌도 이름이 여섯 자 넘어가면서 장수하는 그룹 봤어요? 원더걸스, 소녀시대, 핑클, 베이비복스, (중간엔 잘 모름) 마마무, 여자친구, 이달의 소녀, 블랙핑크 그리고 브런치. 입에 딱딱 붙는데 왜 여섯 글자 이름을 만들어서 분위기를 깨느냐고요. 


스토리의 구성 조건으로 등장인물, 플롯, 사건 뭐 등등이 있어야 한다. 내 글엔 그런 게 없다. 어정쩡하게 있을랑가는 모르겠지만, 스토리보다는 수다다. 나의 수다를 스토리로 격상시키지 말고 다른 이의 전문 지식과 수준 높은 작품을 스토리로 격하하지도 말라. 여전히 브런치의 작가들을 우대할 생각이라면 스토리라는 이름은 작가들의 작품에 선을 긋는 행위다. 나는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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