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May 07. 2016

김릿 예찬

술꾼이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 김릿/김렛을 예찬하다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김릿을 꼽겠다. 진과 라임에 설탕이나 시럽 같은 단 것을 넣어 만드는 김릿은 (다른 칵테일도 그렇긴 하지만) 베이스로 쓰는 진의 종류, 라임의 종류, 단 것의 종류와 비율에 따라 무한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맛이 무한해서 좋은 게 아니라, 이 무한한 맛이 다 마음에 들어서 나는 김릿을 좋아한다. 


실제로 김릿은 드라이하면 드라이 한대로, 스위트하면 스위트 한대로 매력이 있다.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던 이 모든 것이 다 김릿이다. 그래서 나는 첫 잔으로 김릿을 주문할 땐 드라이하게, 마지막에 주문할 땐 스위트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참 재미있다. 드라이와 스위트의 기준이 나는 물론이고 바텐더마다 다 달라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맛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김릿도 나는 다 맛있다. 심지어 조주기능사 레시피를 따라 내가 대충(!) 만들어도 맛있다. 하긴 누구는 그러더라. 진에 라임에 단 걸 넣었는데 그걸 맛없게 만드는 게 더 대단한 재주라고. 

한남동 더 부즈의 김릿, 칼같이 드라이하고 차갑고 날카롭다

맛의 한계가 없는 탓에 김릿은 바텐더의 개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칵테일이기도 하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찾아간 한남동 안알랴줌 바 부즈의 김릿은 칼같이 날카로운 데다가 셰이킹을 강하게 해서 얼음을 플레이크로 띄웠다. 이미 꽤 취한 상태였는데도 목구멍을 찌르는 것 같은 강하고 차가운 김릿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남동 올드패션드의 김릿, 맛있다며 몹쓸(!) 유혹을 건넨다

엘더플라워를 넣어 살짝 트위스트 한 연남동 올드패션드의 김릿은 맛있어 맛있어하면서 먹다가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몹쓸(!) 매력 덩어리였고 셰이킹이 손에 착착 붙네요, 하면서 내준 복정동 바인하우스의 김릿은 김릿의 거친 면들을 갈고 다듬은 것처럼 부드럽고 말랑하면서 우아했다. 이렇게 바마다 바텐더마다 개성 있는 김릿을 내어주니, 내 어찌 김릿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복정동 바인하우스의 김릿, 우아함이란 이런 것이다

허나, 내가 아무리 김릿 예찬이네 어쩌네 하면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김릿에 대한 이 사람의 예찬을 따라갈 수가 없다. 


“여기 사람들은 김릿 만드는 법을 잘 모릅니다. 사람들이 김릿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냥 라임이나 레몬주스와 진을 섞고 설탕이나 비터를 약간 탄 것에 지나지 않아요. 진짜 김릿은 진 반, 로즈 사의 라임주스 반을 섞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섞지 않는 거죠. 마티니는 비교도 안됩니다.”

- 레이먼드 챈들러, 기나긴 이별, 박현주 옮김, 북하우스


칵테일의 왕이라고도 하는 마티니가 비교도 안된다고 했을 정도니 김릿에 대한 이보다 더 한 예찬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얼마나 챈들러가 말한 진짜 김릿을 마시고 싶어 안달을 했었는지. 홍대 빅블루에서 로즈라임 코디얼을 처음 만나던 순간 얼마나 흥분했던지. 몇 년 전에 쓴 글을 다시 옮겨와 본다.  

외국어 표기법에 다르면 Gimlet은 김릿이라고 써야 하고 실제로 외국 사람들도 대개 김릿이라고 발음한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김릿이라고 썼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김렛이라고 주문하고 김렛을 마신다. 김렛 달랬더니 김넷이라면서 김을 네 장 깔아준 바텐더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즐거운 김렛을 여전히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 로즈라임 김릿, 챈들러 & 빅블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