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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pr 04. 2023

거긴 니 방이 아니야

우리 집에서 고양이의 방은 어디인가 

처음 집에 왔을 때 우주는 이동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겁먹은 눈동자로 어미 냄새가 묻은 깔개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원래 아기 고양이들이 입양을 가면 보통은 3일, 길게는 1주일까지도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어린 고양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는 법이라 내내 지켜보았다. 사실 나오게 할 미끼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사료만 먹이고 간식은 절대 주지 말라고 했고, 미리 마련한 장난감을 흔들어 보아도 그저 고개만 힘없이 돌릴 뿐이니까, 기다려야 했다. 


만 하루를 꼭 채우고 나서야 물에 불린 사료를 입 앞에 대주니 먹고 물을 마셨다. 온 가족이 속으로 환호를 지를 정도였다. 조금씩 탐색을 하는 듯하더니, 새로 마련해 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1호실에서 나와서 2호실로 이사한 것이다. 하지만 화장실을 갈 때 말고는 여전히 잘 나오지 않았다. 기특한 건, 어떻게 한 번도 화장실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래서 나는 이 녀석이 천재일 거라고 믿는다. 


어쨌거나, 5일째를 넘어가면서 우주는 1호실, 2호실 다 들어가지 않는다. 숨숨집으로 마련해 둔 3호실도 들어가지 않았다. 숨고 싶으면 책장에 들어가 책 위에 올라갔다. 그러면서 탐색 공간을 넓히더니, 결국 누나 방을 자기 방으로 정했다. 아니, 정한 것 같더라. 


4일째 누나 방 침대에서 잠을 잔다. 거실에서 놀다가 잠잘 때가 되면 누나 방으로 기어간다. 침대가 높아서 올라가지 못하다가 미끄럼틀 같은 스크래치 보드를 갔다 놨더니 그걸 타고 곧잘 기어올라간다. 하지만 아직 점프로 내려오지는 못한다.

3호실 앞에 서 있다.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이 우주 씨, 니 방이 이렇게 많은데 (4호실까지 있다…) 왜 거기서 자냐? 거긴 니 방이 아니야,라고 말해도 빤히 쳐다본다. 내 방 맞아,라고 우기는 것 같다. 아니 거긴 누나 방이라고… 하지만 내 속마음은, 왜 내 방에는 안 놀러 오냐는 거였다. 데려다 놓으면 후다다닥 튀어 나간다. 


아빠 방도 니 방 해라, 우주야. 나는 오늘도 빌고 빈다. 우주는 들은 체도 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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