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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pr 14. 2023

사냥

고양이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거냐, 사냥을 당하는 거냐

나는 사냥을 해 본 적이 없다. 하다 못해 낚시도 못 해봤다. 바퀴벌레나 날파리, 모기, 그 외 정체모를 벌레를 잡은 적은 있지만 사냥이라고 부를 만한 건 내 인생에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요즘 우리 고양이 우주에게 사냥을 가르치고 있다. 사냥도 해 본 적이 없는데 가르친다니. 내가 봐도 한심하다. 그러니 결국 하는 거라고는 고양이 낚시를 눈 앞에서 흔드는 것 뿐이다. 


본능이라는 게 참 놀랍다. 우주는 미끼가 눈 앞을 스치면 잠시 멈춘다. 미끼를 따라 쫓아 다니기도 하지만 그건 괜히 뛰고 싶을 때고(아니, 대체 쟤가 뛰는 이유를 나는 알 리가 없잖아요) 대부분은 앞발로 툭툭 치다가 미끼가 잠시 멈춘 듯 하면 나름 재빠르게 미끼를 낚아챈다. 슬슬 재미를 붙인다 싶으면 안락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가 미끼를 기다린다. 즉, 자기는 거기 숨어 있을테니 미끼를 자기 앞으로 가져오라는 뜻이겠다. 


은둔처 앞으로 미끼를 가져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 나와 미끼를 잡아 채서 몇 번 문다. 그러다가 미끼가 죽었다 싶거나, 재미가 없으면 도로 은둔처로 기어들어간다. 또 흔들라는 거다. 처음에는 나도 재미있어서 몇 번 했지만 가만 보니 내가 사냥을 가르치는 건지, 얘가 나를 시켜먹는 건지 구분이 안된다. 그래서 나도 꾀가 나길래, 좀 빠르게 돌렸다. 그랬더니 처음엔 나와서 쳐다보는 척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스크래처로 올라간다. 

사냥인지 낚시인지, 고양이가 하는 건지, 내가 하는 건지

스크래처 앞으로 쫓아간 나는 다시 미끼를 흔든다. 하지만 이 녀석은 이미 사냥에 싫증이 난 듯 하다. 스크래처 위에서 내려올 생각 없이 그냥 앞발로 툭툭 미끼를 친다. 내려와서 놀자고오, 그러나 내 마음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우주에게 사냥을 가르쳤다.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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