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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pr 28. 2023

고양이와 잠들기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건 언제쯤 배울래? 

우주는 초새벽, 야행성이다. 원래부터 집 고양이 출신이라 사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어려서 그런가 본능에 충실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8시까지 잘 놀고 푹 잔 다음, 또 잔 다음, 또 잔 다음 6시에 저녁을 먹고 약간 피곤한(!) 듯한 상태로 있다가 밤 10시 네 번째 식사를 마치면 그때부터 완전 깨발랄이다. 


할머니가 일찍 일어나시니까 새벽에는 할머니 졸졸 따라다니면서 논다. 할머니가 의외로 이 녀석을 너무 이뻐하다 보니(!) 가끔 아들(나) 밥 해주는 데 지장이 생길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아침을 늦게 먹은 적은 없다. 요즘 내가 우주랑 노니라 늦잠 자서 늦게 먹은 적은 있지만. 낮에는 노상 자고 깨어있는 시간에는 할머니 옆에 가서 존다. 


저녁에 식구들이 퇴근해서 돌아오면 그때부터 집안이 시끌시끌해진다. 원래는 엄청 조용한 집이었는데 우주가 온 이후로 그렇게 됐다. 가족 분위기 전환과 향상에 아기 고양이를 적극 추천한다. 슬슬 잠에서 깬 우주는 놀기도 해야겠고 아직 잠은 오고, 그래서 놀긴 노는데 약간 맥없이 논다. 그러는 동안 밖에서 일하느라 '혈중 우주 농도'가 떨어진 식구들은 우주 농도 높이기에 열중이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그럭저럭 8시가 넘어가면 우주는 점점 컨디션을 회복해 간다. 그러나 반대로 식구들이 슬슬 지쳐 간다. 10시가 되면 식구들은 모두 힘이 빠져 메롱 메롱한 상태로 낚싯줄을 간신히 돌리고 있는데 이때부터 우주는 발에다가 모터를 단 듯, 우다다다 뛰어다닌다. 그래도 귀여워서 다들 거실에 모여 우주를 구경한다. 


10시가 넘어가면 할머니는 주무신다. 누나는 할 일이 있다. 엄마는 우주를 무릎에 앉히지만 곤한 모습이 안타깝다. 이제 내가(아빠가) 출동할 차례다. 나는 원래 '나방과'였으니까. (나비와 나방의 차이를 아시는지. 나비는 예쁘고 낮에 놀고 날씬하다. 나방은 못생겼고 밤에 놀고 뚱뚱하다). 그러나 그것도 젊었을 적 일이지 지금은 어림없다. 하지만 정작 고양이를 들이자고 한 게 나였으므로 마무리는 나의 몫이다. 


12시를 넘기면 나도, 우주도 슬슬 졸린다. 하지만 우주는 더 놀고 싶다. 아빠는 그만 놀고 싶다. 아빠는 의자에 앉고 우주는 자기 방석에 앉고 이제 서로 꼬물거리기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불을 끄고(이건 내 작전이다) 앞발을 손가락으로 살살 만져준다. 악수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아직 체력이 남아 있으면 우주는 네 발로 내 손을 잡고 물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아빠가 내줄 리가 없지. 아픈데. 돌고래 인형을 던져준다. 그러다가 틈을 봐서 슬슬 발을 만져 준다. 주문도 외운다. 우주는 졸린다, 졸린다, 졸린다. 

우주의 눈이 슬슬 감긴다. 내 눈도 감긴다. 깜박 깨서 내 방으로 가려고 하면 우주가 다시 앞발로 내 손가락을 잡는다. 마음이 쿵, 한다. 이 녀석, 아빠를 제일 안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다시 앞발을 잡아서 살살 비벼준다. 잠든다. 가려고 움찔하니 또 두 발을 내민다. 그렇게 둘 다 잠이 든다. 나는 조금씩 우주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woojoo.k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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