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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03. 2023

고양이와 적당이

기쁨과 흥분이 가라앉으면 갈등이 온다 

우주를 데려온 지 한 달이 넘었다. 고양이를 데려온다는 묘한 흥분, 고양이가 차지하는 공간에 대한 적응, 고양이를 키우는 저마다의 방법들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식구들은 대화 시간이 늘었고 분위기는 밝아졌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가 언제나 그렇듯이 흥분이 가라앉고 침착해지면 비로소 갈등이 드러나는 법이다. 


갈등의 소재는 과연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였다. 딸아이는 우주에게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겠다는 마음이고 아내는 이제 됐다, 더 이상 고양이 물건을 집안에 늘리지 말라는 마음이었다. 우주에 대한 흥분과 애정이 서로 다른 마음을 가리고 있다가, 비로소 표출되었다. 딸아이가 캣폴을 이야기하는 순간 아내는 12시간의 가출을 감행했다. “도대체 이 집이 사람 사는 집이야, 고양이 사는 집이야, 적당히 해야지!” 


엄마와 나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말고 이 두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흥미롭게 지켜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생명을 키우는 딸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사실 어느 한 편을 들래야 들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조용히 밥이나 먹을 것을, 엄마와 나는 두 사람의 장단점을 소곤거리다가 딸아이에게 들키고 말았다. “내 험담을 하려거든 들리지나 말게 하든가!” 이런 게 아닌 밤중의 홍두깨인가 보다. 


하루 정도 냉각기가 지난 후 아내와 딸 사이는 평소대로 돌아왔다. 다만 아내는 이동장을 비롯해 노즈 퍼즐, 미니 텐트, 캣폴 대신 사용하던 이케아 의자와 계단 역할을 하던 책들을 치우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동장은 병원 갈 때 쓰려면 그냥 방처럼 놔두는 게 좋은데…”라고 말을 흘렸더니 “어차피 한 달에 한 번은 병원 가야 한다며!”라는 답이 돌아왔다. 알겠다공… 미양… 


‘적당히’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그 적당히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정의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 집 넉넉이와 적당이의 논쟁은 일단 가라앉았지만 아직 캣폴에 대한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으므로 잠재 충돌이 곧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캣폴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 (아니 왜 내가 그걸 갖고 싶은 거냐고) 우리 집엔 캣폴이든 캣타워든 (점점 커진다) 오긴 올 거 같지만 순탄치는 않겠다. 왜 이럴 때 쓰는 명언 있잖나. 허락은 어렵고 용서는 쉽다고. 

우주, 캣폴 사줄까? / 캣폴이 뭐야? 먹는 거야?

하지만 이 와중에 고양이의 마음이 어떠할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캣폴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있거나 없거나 관심 없을까. 요즘 은근히 곁을 들이는 우주에게 물어본다. 헤이 우주, 너 캣폴 갖고 싶냐? 우주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식탁 위에만 관심이 있다. “너는 못 먹어.”라고 말하지만 ‘언젠간 먹고 말 거야’라는 눈빛만 되돌아온다.


https://www.instagram.com/woojoo.k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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