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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05. 2023

고양이와 비

비만 오면 잠잠한 고양이와 에스프레소에 끌리는 나

이제 갓 100일을 넘긴 우주는 세상 경험 이라고는 병원에 두 번 다녀온 것 밖에 없다. 그나마도 무서워서 이동장 안에 숨어 있었던 까닭에 아마 눈으로 본 다른 세상은 집과 병원 밖에 없겠다. – 이렇게 써 놓고 나니 갑자기 내가 왜 마음이 울적해지냐. – 물론 아파트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 봐도 되겠지만 그럴 수도 없다. 아직 베란다에는 우주가 오기 전부터 키우던, 우주에게는 해로운 식물들이 몇 개 있어서 우주는 베란다로 나갈 수가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비오는 날엔 우주의 행동이 달라진다. 밥도 잘 안 먹고, 움직이지 않으려 하고 잠을 많이 잔다. 비오는 날을 고양이가 느끼는 것일까? 챗GPT 선생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해 준다. 


“야생의 고양이는 비를 싫어합니다. 이 본능이 남아서 집 고양이도 비를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에 따라서는 비를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전문가에게…”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런 얘기는 나도 하겠다. 아이고. 하지만 우리 고양이가 비오는 날 민감한 것은 틀림없으니 아마도 본능과 연관이 있기는 할 것 같다. 빗소리, 사람은 느낄 수 없는 비 냄새, 이런 것들이 우주로 하여금 구석에 숨고 잠을 자게 하는 것이 아닐까. 

비가 오네? 하고 말을 꺼내면 우리 나이 때 사람들은 다 이렇게 말한다. “비가 좀 와야 해. 너무 가물어.” 솔직히 나는 비 오는 날에나 느끼는 센티멘탈한 감정으로 에스프레소라도 한 잔 할까 싶어 말을 한 건데, 대답이 저렇게 현실로 되돌아 오면 그 다음 할 말을 잃는다. ‘아, 그렇지. 그래야 커피 농사도…’ 속으로 말해봐야 서로는 이미 다른 감정을 품고 있으니 분위기 반전은 어려워졌다. 


쓰다 보니 나도 이렇게 느끼는데 사람보다 오감이 뛰어난 고양이가 비를 느끼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겠다. 100일 갓 넘긴 아기 고양이가 밥도 안 먹고 놀지도 않고 자기 방에 처박혀 있는 걸 걱정하는 식구들에게 이렇게라도 설명할까보다. 그렇다고 뭐 에스프레소 한 잔 하자는 말은 나오지 않겠지만. 우주가 더 크면 에스프레소 한 잔 하는데 옆에 있어 줄라나. 나는 오늘도 헛된 망상을 꿈꾸며 어쩔 수 없는 집사의 길로 또 한 걸음 나서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woojoo.k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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