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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25. 2016

러스티네일, 녹슨 맛

녹슨 못이란 뜻의 러스티네일에선 녹 맛이 난다고?

믿거나 말거나 내가 러스티네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녹 맛(!)이 나기 때문이다. 위스키의 쌉쌀한 맛 뒤로 따라오는 드람뷰이의 달달함이 묘하게 섞여 시시콤콤한 녹 맛을 낸다. 그 시시콤콤한 녹 맛을 좀 더 세게 느끼고 싶으면 나는 위스키를 탈리스커로 해달라고 요청한다. 달달함 뒤에 올라오는 매캐한 녹 맛은 최고다.  


흔한 건물 지하에 있는 화장실처럼(!) 평범한 문으로 입구를 감춰 놓은 신사동 신시어에서 세 번째 잔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이 잔으로 그냥 마무리할까 아니면 한 잔 더 마실까 이날따라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사무실 돌아와서 마무리할 일이 하나 남아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괜히 술꾼인가. 한 번 더 강하게 지른 후 시원하게 마무리하자 싶었다. 오랜만에 러스티네일을 골랐다. 베이스를 탈리스커로 해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탈리스커와 함께 사장님은 라가불린을 가져왔다. 원래 신시어에는 스모키 러스티네일이란 메뉴가 있고 베이스로 라가불린을 쓴다는 설명도 같이. 이름처럼 터프한 탈리스커도 좋아하지만 우아한 라가불린도 당연히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러스티네일에 라가불린을 주문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비싸니까. (으응?!)


그래도 사장님이 추천하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라가불린으로 주세요. 그런데 뜻밖에도 셰이커가 나왔다. 러스티네일은 빌드 후 스터(잔에 부은 후 저어서) 하는 칵테일이지 셰이킹 하는 칵테일은 아니다. 아, 러스티 네일을 셰이킹으로? 기대감이 확 높아졌다.  


- 보통은 빌드 후 스터로 드시지만 오늘은 셰이킹 해서 드셔 보시지요.

- 그러게요, 이건 처음이네요.  

젓지 않고 흔들어서(!) 나온 러스티네일 아니 웨어울프

녹 맛이 없었다. 깔깔하게 섞인 듯 섞이지 않는 듯 녹 맛을 우려내는 러스티네일은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은 우아한 술이 아이스볼 밖에서 휘돌고 있었다. 야, 이건 뭐랄까, 녹슨 못이라고 하기엔 너무 매끄럽고 우아하네. 골든 네일이라고 하면 좋겠어. 말도 안 되는 잡설을 내던지며 잔을 비웠다. 맛있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 술에는 버젓이 웨어울프라는 깜찍 끔찍 흉칙(!)한 이름이 있었다. 인스타에 셰이킹 한 러스티네일이라고 올렸더니 친구 분이 알려줬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러스티네일의 녹 맛을 좋아한다고 썼지만 진짜로 녹 맛이 나는 건 아니다. 러스티네일이란 이름에서 녹슨 못을 연상하다 보니, 녹 묻은 펌프에서 퍼올린 물을 마시고 시시콤콤했던 기억이 났을 뿐이다. 나는 그저 둔한 미각의 소유자라서 상상한 대로 느끼는 흔한 사람이니까. 실제로 그렇게 믿어버린 분들이 있다면 심심한 사과를 드리겠다. 그러니 궁금하면 꼭 한 번 드셔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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