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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26. 2016

토마토와 네그로니

토마토를 먹지 않는 술꾼에게 토마토가 안주로 나왔다. 

가볍게 소금을 뿌린, 잘 숙성한 토마토가 안주로 나왔다. 하지만 때마침 잔을 비웠음에도 나는 토마토를 먹지 않고 그냥 유심히 쳐다보기만 했다. 옛날엔 흔히 설탕이었는데 요즘은 소금을 뿌려주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 은 개뿔. 나는 토마토를 먹지 않기 때문이었다.  

술꾼이 좋아하지 않는 토마토가 안주로 나왔다 

어릴 때부터 토마토는 그냥 맛이 없었다. 게다가 그 맛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설탕을 뿌려 먹는 걸 더 싫어했다. 그런데 소금 뿌린 토마토를 보자마자 살짝 장난기가 돌았다. 토마토를 싫어한다는 말은 쏙 감춘 채, 토마토에는 뭘 마시면 좋아요? 하고 물었다. 먹지도 않는 토마토를 내놓았으니(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바텐더는 무슨 죄일까마는) 바텐더를 괴롭히기로(!) 마음먹었던 거다. 


잠시 고민하던 바텐더는 뜬금없이 네그로니를 권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천연덕스러운 바텐더는 뭔 안주가 나왔어도 네그로니를 권했을 것 같다. 내 장난기는 결국 혼자만의 허튼짓(!)이었던 셈이다. 


원래 네그로니는 이탈리아의 백작 이름이라던데, 예네버(쥬네버) 진에 내가 엄청 좋아하는 노일리 프랏 루즈, 캄파리, 거기에 페르네트 브랑카 정도의 조합이면 이건 네그로니 중에서도 진짜 귀족이지 싶다. 예네버 진을 바닥까지 탁탁 털어 넣으며 바텐더는, 당분간 이건 마시기 어렵겠네요, 했다. 그런 말에 술꾼은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네그로니. 빛깔 참 곱다 

홀짝홀짝 잔을 들이키며 토마토 한쪽을 씹는다. 익숙하면서도 어쩐지 더 우아한 네그로니와 어색하지만 어쩐지 더 먹고 싶어 지는 토마토의 맛이 이미 술꾼의 뇌를 정복했다. 날마다 이런 것만 마시고 살면 좋겠네, 한탄을 내뱉는 사이 어느새 잔도 비고 접시도 비었다. 마지막 잔이라 생각했던 술꾼의 예상은 무너지고 눈길은 이미 백 바를 훑고 있었다. 칵테일 몇 잔 더 마시기에 밤은 언제나 넉넉하기 때문이었다. 


#술꾼 #바인하우스 #칵테일 #네그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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