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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un 27. 2016

칠게 튀김과 자희향

백곰막걸리&양조장에서 칠게 튀김을 먹고 자희향을 마셨다

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진의 위대함을 인정하지만, 그 위대함을 악용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 터라(예컨대 화려 하게 찍은 펜션 사진에 속아본 적 있으시지요?) 웬만해서는 사진을 보고 흔들리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 사진 한 장을 본 순간,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목적지를 말하지 않은 채 M을 호출했고 미련 없이 차도 내버린 채 지하철을 타고 압구정로데오로 향했다. 문제의 그 사진은 백곰막걸리&양조장에서 올린 칠게 튀김이었다(사진의 위대함 어쩌고 하더니 결국 칠게 튀김이냐??).


새 집 냄새가 미처 빠지지 않은 백곰막걸리&양조장의 2층에서 메뉴판을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해야 했다. 알차게 꾸며 놓은 안주 목록에 흥분한 것도 아니고 A4용지 3장을 꽉꽉 채워 인쇄한 우리 술 목록을 보고 놀란 것도 아니었다(사실은 놀랬다). 메뉴 어디에도 게 어쩌고 저쩌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었단 말이다.


주문을 받으러 온 사장님에게 참게…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칠게라는 이름은 기억도 못했다)는 없나요? 하고 안타깝게 물었다.


-      페북 보고 오셨어요?

-      네 (수줍~)

-      참게가 아니라 칠게 튀김이고요, 고정 메뉴가 아니라 메뉴판에는 없어요.

-      아하!


다행히 칠게 튀김을 주문할 수 있어 마음을 놓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A4용지 세 장 가득 찬 술 목록에서 대체 무슨 술을 골라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칠게 튀김으로 마음이 편해진 나는 좀 뻔뻔하기로 마음먹었다. 칠게 튀김은 내가 골랐으니 당신은 술을 고르시오, 하고 술 선택권을 M에게 던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M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희향을 골랐다.


-      이거 뭐 아는 술이에요?

-      아니요, 맛있을 거 같아서요.

기대헀던 만큼 재미난 안주, 칠게 튀김

솔직히 칠게 튀김이 (맛있긴 했지만) 환장할 정도로 맛있었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딱 내가 기대했던 만큼 재미난 술안주였다. 좀 식었지만(!) 고소하고 촉촉했으며 술안주로 먹기에 딱 좋았다. 술자리를 즐겁게 하고 흐뭇하게 하기에 충분한 안주였다는 말이다.


게다가 ‘스스로 기뻐하며 향을 낸다’는 15도짜리 자희향 약주는 어머 향 좋다~, 하는 감탄사와 함께 입체 착착 붙었다. 세상에, 이런 맛난 술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우리는 이슬만 먹고살아야 하는 건지(흑흑).

그저 향기에 빠져 잔을 들이킨다. 자희향.

훌륭한 안주를 먹었고 향기 좋은 술을 마셨다. 술꾼으로서 이보다 더 알차게 시간을 보낼 방법은 없을 것이다. 만족한 술꾼은 술 취한 원숭이 한 마리를 더 잡아먹고(!) 부엉이 사냥을 떠났다. 술꾼이 부엉이를 얼마나 잡았는지, 잡기는 했는지 그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부엉이를 찾아 나선 술꾼은 부엉이 한 마리가 내놓은 숯 향기에 빠져 신선놀음을 했다는 소문만 남아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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