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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Oct 10. 2015

바와 소음

"저희는 마가리타가 없어요." 바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주문을 훔쳐들었다. 이상했다. 데킬라와 코엥트로와 라임이 있는데  마가리타가 안된다니. 문득 메뉴에 셰이킹하는 칵테일이 없었다는 게 생각났다.

"마가리타가 없다는 건 셰이킹을 안 한다는 뜻인가요." 주문을 끝내고 손이 빈 바텐더에게 물었다. "네, 저희 가게는 너무 작아서 셰이킹하는 소리가 손님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바텐더와 손님의 소리 말고도 셰이커나 다른 바 기물을 다루는 소리 역시 바의 언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조금 이상한 대답이었다. 속으로 은근히 까탈스런 바텐더일세, 하고는 가볍게 웃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해장 커피를 주문하러 들어간 작고 예쁜 카페에서 드립커피 한 잔으로 쓰린 속을 달래는데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손님의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소리였다. 작은 카페가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시끄러운 커피의 언어였다.

문득 셰이킹을 하지 않는 바텐더가 떠올랐다. 바의 언어네 어쩌네 하면서 허세를 떠는 나와 달리 그는 이미 자신과 손님의 공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 들어간 주제에 이래 저래 잘난 척 하기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자신과 손님의 공간을 아낄 줄 아는 바텐더의 마음, 허세 가득한 뜨내기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바 #바텐더 #칵테일 #칵테일바 #트뤼포

바 이름을 딴 칵테일, 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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