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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pr 08. 2016

올드패션드 예찬

술꾼이 칵테일 올드패션드를 좋아하는 까닭이 이러하다. 

“왜 이렇게 올드패션드를 좋아해?” 갓 나온 올드패션드 잔에 코를 박고 한 모금 마신 후 만족한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림을 쓰다듬는 내게 M이 물었다. 


“응?”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뭐, 그냥 아저씨 스타일이잖아. 올드하고 클래식하고. 그냥 그런 게 좋은 나이가 됐나 부지.” 


대충 얼버무렸지만, 나도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올드패션드, 얼마나 다양하고 화려한데 그걸 이름 하나만으로 올드하다고 밀어붙인 꼴이니까. 장미여관의 봉숙 씨가 사실은 엄청난 미인일 수도 있는데, 우린 그냥 봉숙 씨래서 만만히 봤을 수도 있으니까. 

문정동 이세타의 올드패션드는 날마다 진화해서 나를 놀라게 한다. 

적당한 술기운을 빌어 되지도 않는 사설을 읊기 시작했다. 


“어, 사실 칵테일은 말이야… 물질적으로는 술과 술, 술과 음료, 술과 과일 같은 걸 섞는 거지만… 본질적으로는 향과 색과 빛을 섞는 거라고 생각해. 저마다 향과 색과 빛이 있는 재료를 섞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대충하기는 쉬워도 제대로 하기는 어려운 거야. 올드패션드는 이 세 가지 조합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칵테일이지. 나는 이렇게 큰 잔에 나오는 올드패션드가 좋아. 향과 색과 빛을 모두 누릴 수 있으니까.”

살짝 트위스트한 W호텔 우바의 올드패션드. 올드패션드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도 맛있겠다. 

술기운에 한 말 치고는 꽤 멋졌다. 올드패션드 잔을 들어 다시 한 번 향을 맡고 흔들어 색을 보고 배어나는 빛을 마셨다. 이 정도면 괜찮은 술꾼이지. 


자만심에 빠져 흐뭇해하고 있는데 M이 말했다. 


“그래서 올드패션드만 나오면 킁킁거리는 거구나?” 

"으응?? ㅜㅜ." 


우아한 술꾼에서 킁킁거리는 취객으로 떨어졌다. 아무렴 어때. 올드패션드만 맛있으면 되지. "사람을 찾아서 올드패션드를 찾아서, 오늘도 헤매고 있구나." (feat. 장미여관, 봉숙이) 

복정동 바인하우스 올드패션드. 첫잔이든 막잔이든 어떤 순서로도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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