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메리 셸리>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어머니
지난 2014년 초연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같은 창작뮤지컬’이라는 별명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오는 11월 공연이면 벌써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을 정도로, 이미 ‘스테디 뮤지컬’로 탄탄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성준 음악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작곡가로 능력을 뽐냈고, 이후 뮤지컬 <벤허>에서 작곡‧음악감독은 물론 여러 작품에 참여하며 국내 창작뮤지컬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KOPIS가 만나봤습니다.
음악과 드라마를 결합한 뮤지컬에서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평균적으로 10곡이 넘는 뮤지컬 넘버는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뮤지컬은 개별 곡 하나하나를 나눠 생각할 수 없어요. 저는 뮤지컬 작품 자체가 한 곡이라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음악이 이어지지 않는 장면도 있는데, 그렇게 쉬는 타이밍도 하나의 연주이자 음악이라고 생각하죠.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다 보니 어떤 장르의 음악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음악 장르 자체가 뮤지컬이 아닐까요?” 이성준 음악감독은 뮤지컬 넘버마다 장르를 구분할 수 있겠지만, 뮤지컬 음악 전체를 특정한 장르라고 설명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뮤지컬의 음악은 드라마와 한데 어우러져 그 자체만으로도 장르라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이성준 음악감독은 현재 작곡가와 음악감독을 겸하며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에겐 뮤지컬 음악을 직접 작곡하는 작곡가의 삶도, 무대 아래에서 음악을 진두지휘하는 음악감독의 삶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성준 음악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작곡가는 음악을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음악감독은 작곡가와 여러 스태프, 배우들과 음악적인 의견을 교환하고 수정 작업을 거치며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고 합니다.
“저는 <프랑켄슈타인>, <벤허> 그리고 현재 공연 중인 <메리 셸리>의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으로 뮤지컬에 참여하고 있어요. 두 작업을 겸하면서 좋은 점이 많아요. 작곡가와 음악감독으로 함께 참여하며 좋은 점은 앞서 작곡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번 <메리 셸리>에서도 음악감독으로 연습실과 무대에서 스태프와 배우들과 만나 작곡가로서 놓쳤던 부분을 깨닫고 점점 발전시켰어요. 작품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이유죠.”
사실 이성준 음악감독은 클래식 기타 전공자입니다. 뮤지컬 오케스트라 팀에서 기타 연주자로 활동하다 뮤지컬 편곡 작업을 맡았고 이후 음악감독으로 데뷔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그런데 피아노는 벽을 보고 연습해야만 해서 문득 외롭더라고요. 그래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연주를 할 수 있는 악기가 뭘까. 고민하다가 기타로 눈길이 가더라고요. 돌이켜보면 기타 때문에 뮤지컬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뮤지컬을 한다고 했을 때, 당시만 해도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라는 이유로 가족들이 반대했거든요. 그런데 기타 연주자로 시작해 이제는 음악감독과 작곡가로 활동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네요.” 연주자로서 관객의 두 눈을 바라보고 소통하고 싶어 손에 잡게 된 기타는 여전히 그에게 ‘치트키’입니다. 이성준 음악감독은 홀로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야만 하는 작곡 도중에 무언가 풀리지 않을 때면 여전히 기타를 찾는다고 합니다. “음악 작업, 특히나 뮤지컬 넘버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모두 같은 길로 걸어가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 길을 벗어나고 싶을 때, 기타를 잡으면 신기하게도 잘 해결돼요.”
지난 7일부터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메리 셸리>는 이성준 음악감독이자 작곡가의 새로운 작품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원작 동명 소설의 작가인 메리 셸리의 삶을 그렸습니다. “많은 분이 『프랑켄슈타인』을 소설이나 영화, 뮤지컬로 만나 잘 아시겠지만, 원작자인 메리 셸리는 잘 모르시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저 또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준비하면서야 알게 됐어요. 그녀에게 어떠한 아픔과 슬픔, 고통이 있었기에 이런 소설이 탄생했을까 궁금했죠.” 2010년부터 <프랑켄슈타인>의 음악을 작업하며 자연스럽게 생겨난 메리 셸리의 호기심이 <메리 셸리>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막연히 그녀의 인생을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박해림 작가를 만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발전시켰습니다. 작품을 향한 열정이 많았던 그는 창작진과 배우를 만났더니 그야말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정도로’ 행복한 창작 작업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초연 소식이 발표된 후에는, '두려워', '사랑할 자유', '써 내려가지 못한 내 삶은'을 선공개하며 기대를 높였습니다. '어서 빨리 작품을 들려드리고 싶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하던 이성준 음악감독은 KOPIS 인터뷰를 위하여 직접 기타를 가져와 <메리 셸리>의 뮤지컬 넘버를 연주해주었습니다.
“<메리 셸리>를 보는 관객이 이 작품을 즐거워할까? 재미있어할까? 이런 고민을 해오면서 오히려 작업과 연습 과정의 즐거움이 배가 됐어요. 무엇보다 작품에 참여하는 모두가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고 작품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랐어요. 또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소한 부분들이 더 좋게 채워지더라고요. 이 모든 과정이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앞서 작곡가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던 <프랑켄슈타인>, <벤허>가 큰 성공을 거둔 만큼 이번 작품을 앞두고 혹시나 부담은 없을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부담감은 언제나 있어요. <벤허>를 앞두고는 압박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잤죠. 많은 분께서 대극장 뮤지컬을 하다가 규모가 작은 뮤지컬에 도전하게 됐냐고 하세요. 음, 제 답을 말씀드리자면, 이 작품은 제게 도전이에요. 부담감보다는 <메리 셸리>에 등장하는 메리 셸리의 삶, 그리고 메리 셸리를 비롯한 폴리 도리, 퍼시 셸리, 바이런, 클레어 이 다섯 명의 캐릭터를 촘촘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메리 셸리>가 10월 31일 막을 내린 이후엔 이성준 음악감독의 대표작인 <프랑켄슈타인>이 공연합니다. 소설가 메리 셸리의 삶을 다룬 <메리 셸리>와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프랑켄슈타인>이 연달아 오르는 운명 같은 우연이 펼쳐지게 됐습니다. 소설가의 삶과 소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성준 음악감독의 설명입니다. 물론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오는 신선한 즐거움도 놓칠 수 없고요. “무엇보다 메리 셸리에게 저의 영감이 되어 주셔서 감사하다고도 말하고 싶어요. 매번 그녀의 삶에 감탄했어요. 그리고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있지만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오직 작품과 건강을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준비했어요. 메리 셸리의 이야기를 들으러 와주신다면 발걸음이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또 공연장에서 관객들의 지친 삶을 토닥여드리고 싶어요. 마지막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계속해서 제가 사랑하는 뮤지컬과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 공연예술통합전산망 KOPIS 블로그에 작성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