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환상의 호흡’ 개냥이들을 만나다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지난해 초연된 창작 뮤지컬로, 인간이 아닌 개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입니다. 검은 개 랩터와 검은 고양이 플루토가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서로 다른 개체 간의 ‘공감’을 말하는 작품입니다. 이번 재연에는 새로운 배우들의 출연이 눈에 띄는데요. 오랜 시간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창용과 정욱진이 각각 플루토와 랩터를 맡았습니다. KOPIS가 이번 시즌 첫 공연 무대에 함께 오른 두 사람을 만나 ‘환상의 호흡’을 직접 담아왔습니다.
이번 <개와 고양이의 시간>에 출연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이창용 아쉽게도 초연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대본을 읽자마자 굉장히 독특한 소재라고 느꼈어요. 잘 표현하면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맡은 플루토는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인데, 배우로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정욱진 제가 나름 강아지상으로 인지도가 있는 배우예요! (웃음) 사석에서 한재은 작가님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때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작가님께서 정말 재미있게 <개와 고양이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이번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자마자 흔쾌히 결심했어요.
본인이 맡은 캐릭터를 설명해 주세요.
정욱진 랩터는 경찰견이 되고 싶었던 검은 개 도베르만이에요. 그런데 나쁜 사람을 물지 못해서 결국 버려지죠. 그러다 동물들이 모여 있는 센터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났어요. 랩터라는 이름은 영화 <쥬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사나운 공룡 밸로시랩터에서 따왔어요. 주인이 철창 사이에서 기가 죽어 있는 랩터를 보면서 밸로시랩터처럼 용맹하게 살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더라고요.
이창용 플루토는 경계심이 많은 검은 고양이예요. 엄마가 인간의 차에 치여 죽어서 상처도 깊고 예민하죠. 플루토는 갑자기 주변 친구들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고, 그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요. 호기심이 많은 용감한 친구예요.
동물의 특징이 드러나는 상황이나 대사, 노래가 있다면 살짝 알려줄 수 있나요?
이창용 일단 먼저 말씀드리자면 동물을 연기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고민 끝에 섬세한 안무를 통해 개와 고양이의 움직임을 표현했어요. 특히 초반에 날카로우면서 유연한 고양이의 특징이나 특유의 고개를 들며 손을 움직이는 개의 행동을 통해 이 캐릭터들이 동물이란 걸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한선천 안무가가 보통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 연습할 때 땀을 많이 흘렸죠.
정욱진 랩터를 연기하면서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려 했어요. 도베르만인 랩터는 경찰견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은 캐릭터예요. 이 친구를 만나자마자 정우성 배우가 떠오르더라고요. 검은 슈트를 입은 정우성 배우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이미지를 담아내려고 했어요. 물론 거기에 저만의 랩터를 잘 녹여내려고도 했고요.
상대방을 보면 떠오르는 개나 고양이의 특별한 종이 있나요?
이창용 욱진이가 연습 초반부터 랩터를 표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걸 곁에서 봐서인지 어느 순간 정말 도베르만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귀여울 때는 닥스훈트! 팔다리가 짧고 누군가를 졸졸 따라 다니는 까무잡잡한 친구. 형들에게는 애교가 넘치고, 동생들에게는 다정한 욱진이가 닥스훈트랑 비슷하지 않나요?
정욱진 저는 고양이 품종을 잘 모르지만, 창용이 형은 하얀 고양이 같아요. 검은 고양이 역할을 맡았지만 피부 톤이 정말 하얘서 하얀 고양이 같죠.
두 분은 이번 시즌 처음으로 이 작품을 하게 됐잖아요.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이창용 연습실에서 정말 많이 웃었어요. 욱진이는 유쾌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집중력이 정말 좋은 친구죠. 대단하다고 생각한 게 욱진이는 연습 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제안해요. 연습 초반에 제가 눈이 다친 캐릭터라 안대를 끼고 나왔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플루토들이 안대가 불편해서 걱정했더니 욱진이가 ‘선글라스를 끼고 한쪽 안경알을 빼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죠. 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 배우의 불편을 고래해서 해결책을 같이 고민하는 배우라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정욱진 저는 잠깐이라도 ‘어?’ 이런 생각이 들면 일단 말해요. 이 모든 게 창작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아이디어를 던져보고 혹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상처받지 않아요. 안 되면 아닌가 보다. 이러고 계속 생각이 날 때마다 시도해 보는 거죠.
이 작품 속에서 좋아하는 대사, 노래, 장면이 있다면?
이창용 다 좋아서 하나를 못 꼽겠어요.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마지막에 부르는 ‘두 번째 눈’이요. 랩터가 환생해서 돌아올 거라고 주인에게 이야기하는 노래예요. “너와 함께 두 번째 눈을 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다음도, 그 다음도”라는 가사에 인간과 동물의 뭉클한 마음의 전해져서 좋아요.
정욱진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인간을 싫어하는 플루토가 랩터를 만나 변화하는 성장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플루토가 랩터에게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많아요. 그 중 ‘개들의 랩소디’에서는 플루토가 랩터에게 “인간을 만난 건 축복이야. 누군가 너에게 이름을 붙여줬잖아. 우리는 이름을 갖는 순간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돼”라는 말을 해주거든요. 야생동물에서 가족이 되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에서 유독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이 작품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줘요. 두 분은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 어떤 방법으로 회복하나요?
이창용 인간관계에서 어긋남은 오해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일단 저 자신을 돌이켜봐요.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오해를 풀거나 치유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게 아니면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치유되도록 하는 거죠.
정욱진 저는 상처를 잘 안 받는 것 같아요. 만약에 상처를 받으면 시간을 잘 보내려 해요. 상처를 준 대상과 거리를 두고 제가 다시 단단해질 수 있도록 저를 잘 돌보는 거죠.
두 분은 ‘대학로 절친’으로 유명해요. 두 분의 인연은 언제부터였나요?
이창용 욱진이는 대학교 후배예요. 제가 군대 다녀오고 졸업하려고 할 때, 욱진이가 신입생이었죠. 교양수업을 같이 들었어요. 저는 욱진이를 기억하는데 욱진이는 저를 기억 못하더라고요. 약간 섭섭했어요. (웃음) 작품을 하는 걸 지켜보니 기특하더라고요. 어렸을 때도 끼가 많았던 친구로 기억하는데, 역시나 잘하고 있구나 싶어서요. 그러다가 <쓰릴 미> 10주년 공연에 함께 참여했지만, 페어도 달랐고 공연 기간도 달랐어요. 대신 연습실에서도 종종 보면서 언젠간 같이 작품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시데레우스>에 이어 <개와 고양이의 시간>에서도 만났네요.
작품을 기대하며 무대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해주세요.
이창용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정말 열심히 재미있게 만들었어요.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단순히 개와 고양이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모험을 다루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귀엽지만 진지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정욱진 반려동물 키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친구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느낄 수 있잖아요.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을 보면 교감하고 위로하는 많은 감정들이 생기잖아요. 무대 위의 캐릭터를 통해 이런 부분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 공연예술통합전산망 KOPIS 블로그에 작성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