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쳐 ‘현타’를 만난 당신에게 전하는 피아노 연주
매일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피아노를 친다는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뮤지컬 <웨딩플레이어>의 결혼식 피아노 반주자 지원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지원은 내일 반주를 맡은 결혼식의 청첩장을 확인하고는 갑자기 대타를 구합니다. 그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었던 것일까요. 뮤지컬 무대에서 보기 드문 1인극인 <웨딩플레이어>는 대학로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추민주 연출가와 이범재 피아니스트의 합류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서로 다른 지원이를 만들어 낸 배우 최유하와 김지훈을 KOPIS가 만나봤습니다.
<웨딩플레이어>는 어떤 작품인가요?
최유하 처음 대본을 읽으면서 마치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 같다고 생각했어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소통하는 느낌이었죠. 주인공인 지원의 이야기에는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어요. 대본을 읽으면서 ‘나도 이랬는데, 나도 이래서 힘들었는데’ 하는 기억이 나더라고요. 관객 또한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굉장히 유쾌하지만 무겁기도 한 작품입니다.
김지훈 우리가 보통 겪는 실패나 좌절의 순간들을 담은 작품이에요. 그래서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웨딩플레이어>는 ‘다시 한 번 더 힘을 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거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관객과 소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최유하 일방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과정도 소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극 중에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에게 끝없이 질문하고, 돌아오는 반응을 느끼며 대사를 하거든요. 예를 들어 “내 마음이 왜 이럴까요? 왜 난 아직도 치유가 안 됐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관객들의 반응이 느낌이나 공기를 통해 저에게 되돌아오거든요. 이것도 충분히 소통이 아닐까요?
작품에서 피아노가 주요하게 사용된다고요. 연습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김지훈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해서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피아노 외에도 다뤘던 악기들이 있어서 음악이 익숙했죠. 무엇보다 이범재 음악감독님께서 연주할 클래식 곡을 잘 편곡해 주셔서 열심히 연습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신 있는 건 피아노밖에 없어서 정말 열심히 하기도 했고요.
최유하 저도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손을 놓은 지가 꽤 오래됐어요. 간혹 코드로만 치면서 노래를 하는 정도였는데, 연습 과정에서 그나마 자신이 있었던 서정적인 곡들이 사라지고, 강렬한 연주곡들만 남게 된 거예요. 힘이 있는 곡들 중심으로요. 다른 배우들이 강하게 건반을 누르는 걸 보면서 제가 부족한 거 같아 마음이 조금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범재 음악감독님께서 굉장히 디테일하게 연주 팁을 주시더라고요. 덕분에 부담이 많이 줄었어요.
<웨딩플레이어>에는 여러 피아노 곡이 등장하더라고요.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지훈 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이요.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 곡이에요. 중학교 3학년 때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때 음악 선생님과 함께 몇 개월 동안 이 곡을 공부했어요. 아직도 앞부분은 기억할 정도로요. 그래서 이 곡을 들으면 항상 선생님이 생각나요. 게다가 베토벤의 음악은 마음의 울림을 주어서도 정말 좋아해요. (최유하 : 정말? 지원인데) 하하, ‘열정’만큼은 정말 지원이처럼 했던 것 같아요.
최유하 저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요. 지원이가 치유를 받을 때 나오는 곡인데, 진짜 치유가 되더라고요. 항상 어렵다고 생각했던 음악인데 작품에서 지원이가 가장 괴로울 때, 이 곡이 힘이 되어 줘요. 그 순간이 가장 좋아서 이 곡을 꼽고 싶어요.
지원을 연기하면서 그에게 완전히 몰입됐을 때가 있다면?
최유하 저는 지원이가 마치 나 같아요. 제 인생에서도 지원이가 겪었던 경험, 순간이 있어요. ‘현타’가 오는 날들. 그런 날들을 제가 어떻게 견뎌냈을까 생각을 해보니 지원이랑 비슷했어요. ‘나 지금 슬프지 않아. 괜찮아. 원래는 안 하고 싶었는데 잘 된 거지’ 하며 나를 달래기 위해 했던 말들, 내 마음에 상처를 주던 경험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연습하면서도 많이 울었죠. 제가 했던 말과 생각들을 지원이가 하고 있으니까 무대에서도 진정성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김지훈 지원이 아빠는 지원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거든요. 아빠와의 장면을 할 때마다 실제 저의 아버지가 생각났어요. 지원이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면서 아빠가 자신에게 해준 만큼 성공하지 못해 항상 아쉬워하고 미안해해요. 저도 그렇고 더 잘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아쉬움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요? 지원의 입을 빌려서 이런 아쉬움을 이야기할 때 저도 같이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부모님께 보답할 시간이 많으니 기대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뮤지컬에서 보기 드문 1인극이라 유독 무대가 넓게 느껴질 것 같아요.
최유하 예전에 짧게 연극 <갈매기>를 1인극으로 했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작품 속 인물들을 약간의 소품을 이용해 바꾸면서 연기하는 형식이었어요. 제 생각이 투영된 인물이 제가 생각하는 또 다른 인물과 이야기하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작품 속 모든 인물을 제가 흡수하다 보니 감정이 더 풍부해졌어요. 이와 달리 <웨딩플레이어> 무대는 혼자 오르고 관객에게 열려 있어요. 소극장이기 때문에 제 방 같아요. 막연하게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리허설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에 맞닥뜨렸어요. 뮤지컬을 진행하기 위해선 ‘음향 큐’나 ‘조명 큐’ 같은 다양한 약속이 있는데요. 이걸 놓치고 있었던 거예요! 또 제 호흡 하나로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졌죠.
김지훈 저도 비슷해요.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다고 생각하니까 문득 무섭더라고요. 물론 부담도 됐죠. 유하 누나 말씀처럼 무대에는 많은 약속이 있어요. 그 약속은 저를 도와 작품을 풍부하게 해줘요. 무대 위에 혼자 있지만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피아니스트, 퍼커니스트, 스태프들과 함께 공연한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웨딩플레이어>를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지훈 대학로에서 자주 만날 수 없는 뮤지컬 1인극이라는 점! 한 배우가 작품을 이끌어 가는 방식이 굉장히 색다른 관람이 될 거예요. 또 마치 콘서트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지원이와 함께 호흡하며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을 주는 작품이에요.
최유하 <웨딩플레이어>는 좋은 노래와 드라마가 잘 어우러져 있어요. 클래식 곡이 적재적소에 나와서 지원이의 마음을 톡톡 건드리려 줘요. 한 번 보시면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드실 거예요.
* 공연예술통합전산망 KOPIS 블로그에 작성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