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를 예뻐해 주는 '아빠 친구' 가족들과 함께한 식사
2. 작은 체리가 올라간 맑고 붉은 네일
작사가 김이나는 "한 사람의 결이나 질감은 잘 관리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했다. 내게서 완벽하게 지울 수 없는 문제라면 다듬고 다듬어서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은 참 멋있다. 엄마와의 여행을 앞두고 우연히 내려다본 손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행을 핑계로 오랜만에 네일숍을 예약했고 못 생긴 손톱을 (그나마) 보기 좋게 만들겠다는 각오로 방문했다. 예상보다 좋게 자리를 잡은 손톱을 보면서, 사장님과 짧은 감탄 후에 '잘' 관리된 콤플렉스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곱씹었다. 작게 알알이 맺힌 체리가 주는 귀여움은 말할 것도 없고.
3. 뚝섬역 '와아'의 와인을 곁들인 수제 아이스크림
뚝섬역 근처에 와인과 수제 아이스크림을 함께 판다는 와인바 '와아'의 이야기를 들었다. 맛있는 걸 종종 함께 먹으러 가주는 지인에게 연락을 했고, 이직으로 정신이 없는 그와 어렵사리 시간을 맞췄다. 금요일 저녁 7시에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이 계단에 서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치즈를 활용한 아이스크림이 굉장히 맛있었는데, 쫀득한 식감이 와인과 정말 잘 어울렸다. 아이스크림과 비스킷, 치즈의 조합의 완벽함을 이곳에서 알게 됐다. 다만, 예상보다 더 작은 공간이라 오랜 시간 편히 이야기할 수는 없는 점은 아쉽다.
4. 춘천 소양강댐
춘천 소양강댐은 경기 북부에서 약 1시간 4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드라이브 코스다. 완공 당시 동양 최대의 사력댐이라는 규모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댐과 댐 건설로 인해 탄생한 소양호 또한 광범위한 크기를 자랑한다. 정상 주차장에 내려 조금만 걸으면 소양호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데, 강원도 산바람과 탁 트인 하늘이 장관이다. 다만 입구에서 정상까지 꽤 구불구불한 도로가 이어지고 정상 주차장은 주말에 늘 만석이라 초보 운전자에게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지만, 탁 트인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만큼 곳곳에 쉴 수 있는 의자가 있는 것도 좋다. 세월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식당이나 다방, 깔끔하고 다양한 음료가 있는 카페도 소양호를 따라 늘어져있으니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소양호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고 청평사에 가도 좋다.
5. 춘천 '명가막국수'의 막국수와 편육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주력 음식이 맛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맛집에는 자꾸만 회자되는 반찬 하나쯤은 있다. 춘천 명가막국수의 '킥'은 열무김치다. 아삭거리는 열무김치의 식감이 막국수, 편육과 어우러질 때 환상적인 호흡이란 이런 것이라는 깨달음이 몰려온다. 맵지도 짜지도 않은 시원한 열무김치는 입안 가득 오독한 경쾌한 첫인상과 곧이어 톡 쏘는 느낌이 퍼진다. 메밀막국수에 한 젓가락 집어 면 위에 얹으면 열무막국수가 되고, 자칫하면 퍽퍽할 수 있는 수육과 함께라면 느끼함을 사라지게 만든다. 바삭한 감자전에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두 사람이 방문해도 꼭 막국수 2개와 수육 하나를 시키는 이유다.
6. 무조건 이기는 가위 바위 보 게임
공유 오피스의 가장 큰 공용 라운지에서는 종종 이벤트가 열린다. 입주사의 직원들이 커피나 음료 혹은 간식을 위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오후 시간대에 주로 진행된다. 샘플을 무료로 나눠주는 이벤트에서는 작은 게임도 진행되곤 하는데, 이날은 '무조건 이기는 가위 바위 보 게임'이었다. 음료 하나를 받자고 고작 가위바위보 게임에 죽자고 달려들어야 하는 건가, 혹시 진다면 그 민망함이 걱정되어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내 어지러운 눈동자를 읽어낸 이벤트 담당자가 웃으면서 묻는 거다. "가위, 바위, 보 중에 무엇을 내실 건가요?" 이 날,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말로 무조건 이기는 가위바위보 게임을 했다. 이벤트 담당자의 눈치코치 덕분에 음료 두 병을 든 손이 더욱 즐거웠던 날이다.
7. 천 원의 가벼운 희망 즉석복권
잘 짜인 특별한 루틴은 일상에서 꽤 즐거운 요소로 작용한다. 일주일의 피로를 풀기 위해 목욕탕을 가곤 하는데, 목욕탕이 위치한 건물 입구의 작은 편의점에서는 다양한 복권을 판다. 요즘은 당첨을 기다려야 하는 로또나 연금복권보다 즉석복권을 선호하게 됐다.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묵적인 구매 룰은 2장 혹은 3장으로, 날려도 기분 좋을 정도의 한계 금액을 정해 구매한다. 5억 원의 당첨금이 내 것이 될 수는 없겠지만, 운이 좋은 1천 원이나 5천 원의 행운이 짜릿함으로 자리 잡았다. 매번 푸스스 웃으며 '오늘도 꽝이네'라는 농담을 던지며 몇 장의 종이를 버리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8. 점심시간에 산책하는 서울숲
집이나 회사 근처에 근사한 산책로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길거리에 버려진 깡통처럼 이리저리 차이는 듯한 기분이 들 때면 점심을 최대한 빠르게 흡입하고 근처 서울숲으로 향한다. 잘 가꿔진 산책로와 넉넉히 준비된 의자는 걷다가 쉬다가 산책자의 선택폭을 넓힌다. 적당히 생기 있고 적당히 고요한 서울 한가운데의 숲. 터덜터덜 걸어와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저마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계절의 변화를 깨달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단 5분 만이라도 세상과 단절된 위로의 시간을 보내고 일어서는 순간엔 나도 모르게 씩씩한 걸음을 발판 삼아 현실로 돌아간다.
9.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보낸 평온한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