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백수로서

늦깎이 백수의 눈칫밥 일기

by 박보라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백수가 될 것이다!


2024년 추석 연휴 : 추석 연휴 전날 (업무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애매한 이야기들이 고개를 자꾸만 싸한 직감을 가지고 왔다. 이리저리 대책을 제시해 봐도 외부든, 내부든 아리송한 대답이 돌아왔고 결국엔 안개가 잔뜩 낀 기분으로 연휴 내내 노트북 앞에서 일을 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마음에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았지만 내 상황을 현실적으로 판단해 보니 쉽게 사표를 쓸 수도 없었다. 사업 초반이라 이럴 테지. 곧 나아질 상황을 기대하며 정신을 다잡았다.


2024년 9월 : 10여 년을 그리고 몇 군데 회사를 다니면서 여러 상황에 내동댕이쳐졌다가 상처를 받은 것도 여러 번이지만, 오로지 나만 책임지고 해결하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삶의 목적이 ‘일’이 아니기에 늘 재직 중의 목표는 하나였다. 회사와 나 Win-Win 하는 것. 업무 중에 수시로 나 자신이 하찮아졌고 망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고민하고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나였는데, 퇴근을 한 밤이나 주말이면 맛있는 것을 먹기만 하고(대개는 엄마 밥) 내리 잠을 잤다. 좋아하는 취미 생활도, 메모를 적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무엇을 사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사소한 이야기에 툭! 눈물이 났다. 엄마에게 솔직하게 있었던 일을 다 말했다. 내 말을 듣던 엄마는 조용히 ‘직원의 마음가짐과 대표의 마음가짐이 다른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2024년 10월 초 : 전화가 울려도, 카톡이 도착해도 한숨이나 짜증이 나거나 마음이 답답해졌다.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히기도 했다.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일에만 파묻혀 있었다. 열정이라는 이름 아래 새벽 2시까지 일을 하는 사람 정도는 되어야 최선을 다하는 행동이란 말을 들었다. 일방적으로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당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이미 격한 감정으로 빠르게 쏟아내는 이야기들에 울컥, 대답을 한 것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마저도 그냥 무감각해졌다. 죄송하지 않았지만, 죄송하다는 말이 그냥 흘러나왔다.

자꾸만 명치끝이 답답해져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민폐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말이라도 못 하면 정말 미칠 것 같아 대신 타로점과 신점을 봤다. 이렇게 힘드니까 그만두고 싶은 내 마음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랐다. ‘무직자’가 되어도 괜찮을 거라는 따스한 말을 듣고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홍대에서 뒤집은 카드도, 날카롭게 짤랑이던 엽전도. 내게 말해 준 ‘내일’은 같았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고. 최대한 빨리 회사를 나오라고. 이런 말을 맹신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미신이라는 것도 잘 알았지만 신기하게도 불안한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문득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후 또 크고 격한 감정의 빠른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쏟아졌던 날, 엄마 앞에서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는 말은 다행히도 삼켰다. 엄마가 지금까지 내가 모아 온 돈을 계산했다. 허락이 떨어졌다.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던, 죽고 싶던 마음을 쓸어내렸다.


2024년 10월 16일 : “퇴사하려고 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물론 이유는 거짓이었다. 그 이유를 대야만 비비적거리며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퇴사 통보에 돌아온 답과 그에 따른 또 다른 이야기들은 또 하나의 상처로 남았지만 더 이상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퇴사 일정 확답은 한 번에 받지 못해 눈치를 보며 여러 번 말을 꺼냈다. 결국엔 한 달을 채워서 근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잘’ 퇴사하기도 힘들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2024년 11월 8일 : 몰려드는 전화로 정신이 없었다. 모두 다 안 된다는 대답이었고 이어진 다른 전화에서는 2시간 가까이 비난이 쏟아졌다. 꽤 오랜 사회생활 중 처음 느낀 강도의 비난에 두통이 몰려왔다.

나는 어쩌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상황을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이날도 내 신념이 머릿속을 가득 찼지만 분노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내 귀를 때렸다. 쉽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심장이 또다시 뛰었다. 그날 “너 때문이야”라는 크고 높은 목소리만이 기억에 남았다.

지난 10월까지만 근무한다고 할 걸, 점심을 굶으며 일을 하다 옆자리 직원이 건네준 베이글을 한입 뜯어먹으며 눈앞이 컴컴해졌다. 심장을 찔렀던 몇몇 말들과 표현이 생각나서 지금 당장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더 이상 마음을 고장 내기 싫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2024년 11월 6일 : 조언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 속에 이야기들이 이어졌지만 냉정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마치 감정 없는 기계처럼 1.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조언인가? 스스로 묻자. 2. ‘예’라는 판단을 내렸다면 앞으로 수용하자. 3. ‘아니요’라는 판단을 내렸다면 무시하자. 나름 오랜 시간 고민하며 수용할 것들과 무시할 것들을 분류하고 한 손에도 꼽히지 못할 피드백을 가뿐한 마음으로 정리해 두었다. 이글에서는 적지 못할 생각들도 함께. 이야기가 끝나고는 내 키보드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짜증이 난다는 짜증을 들었다. 이제라도 회사에서 지급된 키보드를 바꿔야 하나 순간 멍해졌다.


2024년 11월 15일 : 인수인계 회의를 몇 번을 하는 것일까. 자료를 또다시 백업했다. 흔한 웹하드나 나스, 공유폴더도 없어서 USB에 자료를 전달했다. 자잘한 일들이 연이어 이어지며 퇴사 후에 연락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지난 6일과 비슷한 조언 아닌 조언들이 수없이 반복되길래 그냥 흘려버리며 기억에서 지웠다. 사소한 걸 잘 기억하는 내 성향을 스스로가 잘 알아서 종이를 내려다보며 퇴사 이후에 무엇을 할까, 아니 당장 퇴근 이후에 무엇을 할지를 고민했다. 여전히 내 키보드 소리가 시끄럽다며 격한 짜증을 내는 목소리가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날인데 좀 참아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문득 변한 관계가 슬퍼지기도 했다. 원래 계획은 혼자만의 저녁을 보내는 거였지만, 사무실을 나서며 마음을 바꿨다. 엄마와 함께 집 근처 초밥집에 들렀다. 괜찮은 척 웃으며 혼자 22피스를 먹었다. 마음이 허해서, 아무것도 없이 사라진 나를 채워 넣고 싶어서 꾸역꾸역 초밥을 들고 하나씩 입에 넣었다.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말을 머릿속에 가득 채웠다.


KakaoTalk_20241218_135654954.jpg 퇴사하는 날, 사무실에 남아있는 직원끼리 소박한 점심을 했다. 앞으로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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