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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예진 Jul 24. 2018

냉장고서 사람 나오네?
비밀의 문 열린다

똑똑똑 , 이색 출입문

더듬더듬 … 그림이 그려진 벽을 만지다 뒤로 쑥 밀리는 비밀의 문을 발견한 남성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문 안쪽으로 발을 내딛는다.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짐 캐리가 현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과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최근 영화 속에서만 찾을 수 있었던 이색 ‘문’이 도심 곳곳에 생겨 눈길을 끌고 있다. 문의 정체를 미리 알고 가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영화처럼 현대인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을 찾아 노크해봤다.

“여보세요? 지도상에는 카페 앞에 도착한 걸로 나오는데 문이 보이지 않아요.”

“네~ 도착한 곳 맞아요! 자세히 보면 유리문 있죠? 거기로 들어오세요~.”

지도 앱을 보고 카페를 찾은 사람들이 도착지에 와서도 문을 찾지 못해 가게로 전화한다. 가게 주인은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출입구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숨겨진 보물을 찾듯 문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문 앞에서 문 찾는 손님들

출입문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로인 문은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꾸며졌다. 거리에서 많은 손님을 맞이하는 카페나 식당과 같은 가게들일수록 출입문을 강렬한 색상이나 큰 크기로 만든다. 하지만 최근 눈길을 끄는 출입구는 종전의 손잡이가 달리고 직사각형과는 다른 형태를 보인다. 멀리서 보면 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완전히 다른 모양이거나 사람들이 문이라고는 예측할 수 없도록 벽과 같은 색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 광희동에 냉장고처럼 입구를 꾸민 ‘장프리고’가 문을 열었다. 언뜻 보면 동네 작은 과일가게처럼 보이지만 냉장고 문 뒤로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진다. 방문자는 한쪽 벽면에 놓인 냉장고 문을 열어야 좌석이 있는 실내로 들어갈 수 있다. 간판이 없고 ‘싱싱한 과일 판매합니다’라는 글귀만 적혀 있어 처음 오는 사람은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로 운영되는 곳이다. 장지호 장프리고 대표는 “주거지역에 위치한 만큼 지역 주민과 함께 융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냉장고 문 앞은 과일가게, 문 뒤쪽은 평소 생각한 분위기의 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자판기 모양의 문도 있다. 서울 망원동 카페 ‘자판기’는 회색 벽 앞에 분홍 자판기 한 대가 놓인 것처럼 입구를 디자인했다. 자판기 문 바로 옆에는 긴 의자를 배치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판기에서 음식을 뽑아 의자에 앉아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곳 문 앞에서 자판기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다가 사람이 불쑥 나와 놀라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인천 을왕리에는 우체통으로 문을 꾸민 카페 ‘도우도우’가 있다. 성인 남성 키보다 큰 우체통으로 들어가면 카페로 이어진다. 박재민 도우도우 대표는 “바닷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기 때문에 문을 튼튼하게 설치하고 싶었다”며 “강하고 방풍 효과가 있는 형태를 생각하다가 커다랗고 입체적인 입구를 구상했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각자 하나의 편지가 돼 서로에게 반가운 이야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우체통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색 문은 단순하게 재미를 주는 ‘인테리어’ 요소일까. 전문가들은 독특한 출입문은 방문자에게 경험 소비를, 운영자에게는 자신만의 특별한 콘셉트를 형성한다고 분석한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외식프랜차이저 MBA 교수는 “소비자는 냉장고·자판기 문을 들어가면서 색다른 경험이라는 만족감을 얻는다”며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소셜네트워크(SNS) 시대에 맛은 기본이고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볼거리가 충족돼야 사람들이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업주들은 다른 가게와 경쟁했을 때 차별화되는 상징적 요소를 찾는데 이 중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특별한 멋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문’이 꼽힌다”고 덧붙였다. 
   
비밀스러운 형태의 문은 아는 사람만 찾을 수 있는 ‘아지트’라는 인식으로도 이어진다. 서울 만리동에는 낡은 유리문 카페 ‘현상소’가 있다. 간판과 상호명이 없어 밖에서 보면 낡은 건물에 있는 평범한 사무실처럼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련된 분위기의 넓은 카페가 나온다. 

                 
서울 한남동에는 퓨전 사천음식 레스토랑 ‘레드문’이 있다. 이곳은 붉은 벽돌 건물에 빨강 대문을 설치해 어두운 밤에는 문을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안휘수 레드문 대표는 “문 앞에서 레스토랑을 찾지 못하겠다며 없어진 것 아니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많다”면서 “손님이 많은 것도 좋지만 이곳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에게 독특한 문으로 작은 서프라이즈 선물을 하고 싶었다”며 “실내가 훤히 보이는 것보다 ‘문을 열면 어떤 향기와 분위기와 음악이 있을까’란 궁금증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나만 찾을 수 있는 아지트
이 같은 장소는 SNS를 통해 특별한 장소를 찾으면서도 아직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또는 나만 아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트렌드 세터에게 주목받는다. 박성희 한국트렌드 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자신의 이야기를 SNS로 공유하고 싶지만 동시에 혼자만 알고 즐기고 싶은 ‘정보 소유욕’도 크기 때문에 이 같은 숨겨진 장소가 인기를 얻는다”며 “이들은 이곳에 와서 사진을 찍고 온라인상에 올리지만 다른 게시물처럼 장소를 공개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박 연구원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나오는 미국 뉴욕의 스피크이지 바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이 문을 열면 완전히 다른 공간이 나올 거라는 몽환적인 분위기도 이 같은 공간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이경태 맛있는창업연구소 소장은 “가게 또는 음식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다른 가게의 독특한 문 형태를 그대로 따라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며 “음식의 맛과 자신만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디자인이 더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http://news.joins.com/article/22827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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