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렌이 준비 04
이제 고작 서른짤, ‘어렌이’ 준비됐나요 04
(어른이+오렌지, 상큼한 어른)
대학시절 부지런히 과외를 했다. 20살이니 내 힘으로 생활비용을 벌기 위해서였지만, 사실 궁극적인 이유로는 명품가방이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명품 가죽 가방을 들고 다니는 학과 언니들을 보면서 내심 부러웠나 보다.
조금씩 조금씩 매달 돈을 모아, 버버리 가방을 마련했다. 누가 봐도 이것은 ‘버버리 가방’이라는 것을 티 내는 제품이었다. 다음 해에는 루이비통 가방을, 그다음 해에는 구찌 가방을, 그다음 해에는 펜디 가방을 구입했다. 모두 브랜드의 로고가 빼곡히 그려진 스타일로, 지나가다 보면 비슷한 디자인을 든 사람들을 자주 마주칠 정도로 당시 인기 가방들이었다.
“앗 나와 같은 가방이네? 당신도 명품을 들었군요!” 속으로 생각하며 우쭐댔다.
직장에 들어가고 학생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지만, 정작 지금은 명품 가방을 들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리도 멋있어 보이던 명품 가방들이 지금은 촌스러워 보여서다.
두껍고 재질 좋은 가죽 덕분인지 무겁기도 참 무겁다. 뻐근한 어깨와 목을 매일같이 주무르는 나에게 명품 가방은 멋보다는 짐이 된 것이다.
“나만의 멋을 보여 줄 수 있는 실용적인 가방이 최고야!”
명품 가방 졸업할 시기.
지금은 천으로 제작된 작은 가방을 거의 매일 든다. 빨간 하트가 달린 열쇠고리를 가방 옆에 달아, 포인트를 준 에코가방이다. 가벼운 것은 물론이고, 전철에서 나와 같은 가방을 든 사람도 보기 어렵다.
이 가방을 들고, 값비싼 명품 가방을 멘 사람 옆에 설 때면, 이상하게 색다른 우쭐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명품 가방의 장점도 많다. 질리지 않는 디자인,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 등. 하지만 만약 이와 같은 장점을 고려하지 않고, 오롯이 남들 보여주기 식을 위해서만 명품 가방을 모아 왔다면 이제는 과감하게
인터넷에서 브랜드 이름만 치면 줄지어 나오는 같은 디자인의 가방은 재미없지 않은가. 보자마자 ‘이거 어느 브랜드 가방이네!’를 외칠 수 있는 가방은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서른, 나만의 이야기가 든 패션 아이템을 찾을 때다. 나는 요즘 천 가방을 들으며 이렇게 말한다. “어깨가 확실히 덜 아파! 여기에 달린 빨간 하트 열쇠고리는 내가 홍대 길을 걷다 샀는데, 어릴 적에 좋아하던 스티커랑 닮아서 샀어! 예쁘지?”라고 줄줄줄.
가방이 물에 닿을 까 봐, 더러워질 까 봐, 전전긍긍하던 모습도 없어졌다.
“몇 년 동안 나는 배웠다. 옷 입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옷을 입고 있는 여자라는 것을” 이브 생 로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