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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예진 Aug 08. 2019

우리 할머니에서 ‘나순례’씨로  불린다면, 눈물이 난다

 어렌이 준비 05

이제 고작 서른짤, ‘어렌이’ 준비됐나요 05

                            (어른이+오렌지, 상큼한 어른)


이제 고작 서른짤, ‘어렌이’ 준비됐나요 05

우리 할머니에서 ‘나순례’씨로

불린다면, 눈물이 난다


나에겐 올해로 99세가 되신 외할머니가 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전라도 나주 작은 시골집에서 홀로 사시는 나의 할머니다. 곧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시지만, 건강하신 모습으로 자신의 집에서 사시기를 강하게 주장하신다. 어쩌다 막내딸(엄마) 집인, 우리 집에 놀러 오시면 하루 이틀을 못 버티시고 다시금 시골로 내려가신다.


“엄마~할머니는 정말, 건강하셔~그치?”


항상 깔끔하신 모습으로 “예진아~예진아~밥은 먹었어~?”를 물어주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늘 엄마에게 말했다. 어김없이 할머니는 시골로 내려갔고, 다시 할머니가 몇 달 만에 우리 집 거실에 오셨다.

콜록콜록, 기침소리와 함께 오신 할머니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퇴근한 나를 어김없이 웃으면서 맞아줬다. 감기에 걸린 할머니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서울 딸네 집으로 요양을 오신 것이다.


보글보글, 집안에는 고소한 전복죽 끓이는 냄새로 가득했고 나는 또 너무 행복했다. 할머니와 거실에서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시간들은 어떠한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안정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하게 집안을 활보하다, 한 컵과 실내화를 보고 갑자기 울음이 났다. 화장실 세면대에 놓인 어여쁜 분홍빛 플라스틱 컵에는 무심하게 매직으로 적혀있는 ‘나순례’, 글자가 있었다. 같은 색상 실내화에도 큼직하게, ‘나순례’. 모두 할머니 이름이었다.


우리 집으로 오시기 전, 기운이 너무 좋지 않아 나주 근처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오신 흔적이었다. 요양병원에서 할머니는 삼시세끼 식사를 잘 챙겨 드시고, 친구도 사귀시면서 기운을 얻으셨다고 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인데, 왜 나는 그 흔적을 보며 울음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우리 할머니가, ‘나순례’씨가 돼서 혼자서 계셨을 생각을 하니 그 이름 석자가 너무나 외롭게 느껴졌나 보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할머니는 외로웠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고 잘 지내 셨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컵이 없는 우리 집안에 한 컵만 덩그러니 이름이 적혀있으니, 마음이 쓸쓸했다. 그 후, 할머니는 다시 활기를 찾고 다시 시골로 가셨다.   


“할머니~맛있는 거 많이 먹고 아프지 말아야 해~”

“이제 죽어도 돼~얼마나 오래 살라고~”


할머니는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외롭지만 말을 못 하는 걸까. 할머니에게 직접 물어볼 순 없었다. 할머니 나이가 돼야만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그저, 할머니가 덜 외롭도록 전화하고 작은 택배를 보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최근에는 끓이기만 하면 완성되는 된장국 팩 5개를 보내드렸다.


“할머니~택배 왔다던데! 받았어?”


“어어~~ 늙은이라고 한 개

더 보내줬나 봐~6개 보내왔더라~~”      


“할머니~하나는 아이스팩이야~ 그건 먹으면 안돼"


아이스팩 에피소드로 한참을 웃으며, 할머니의 건강한 목소리에 다시 감사함을 느꼈다.


서른,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인이 된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와 맛있는 식사를 함께하거나 선물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조지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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