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한복 멋쟁이
2030세대가 즐겨 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5000년 역사를 지닌 옷 사진이 매일 올라온다. 누적 컷 수가 자그마치 19만여 장이다. ‘한복’ 얘기다. #한복스타그램 #모던한복 #한복생활 등 관련 해시태그도 다양하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세계를 여행하거나 회사에 출근하는 등 한복을 자신만의 개성과 화려함을 나타내는 ‘패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한복러’(한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신조어)라고 말한다.
한복을 향유하는 2030세대 모습이 변화하고 있다. 3~4년 전까지는 전북 전주의 한옥마을 근처나 서울 유명 고궁 등에 있는 한복 대여점에서 전통 한복을 빌려 하루 동안 ‘반짝 패션’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비교적 저렴하고 실용도 높은 생활한복을 구입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상복으로 한복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한복을 입는 사람들의 모습도 1인 중심으로 바뀌었다.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한복을 맞춰 입고 나들이를 나온 모습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혼자서 한복을 입고 개인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한복러’는 여행을 떠날 때 여행가방에 생활한복을 챙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활동하기 편안한 디자인의 한복을 입고 세계 곳곳을 누빈다. 지난 8월부터 현재까지 세계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전혜진(32)씨도 한복을 즐겨 입는다. 전씨는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많아 이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한복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며 “한국 문화에 낯선 외국인에게 직접 입은 한복을 보여주고 한국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소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화사한 색감과 화려한 패턴이 사용되는 한복은 여행자의 설렘을 대변하기도 한다. 올겨울 처음으로 한복을 입고 제주도를 여행한 심정연(29)씨는 “빨간 저고리를 갖춰 입었는데 어느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도 개성 있고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나와 만족스럽다”며 “평범할 뻔한 20대의 마지막 여행이 한복 하나로 특별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2030세대에게 한복은 색다른 디자인의 패션으로 다가서고 있다. 체형에 맞게 입체적으로 제작되는 서양 옷과 달리 한복은 평면적인 형태로 만들어져 입는 사람에 따라 옷맵시와 선의 흐름이 달라진다. 착용하는 사람의 개성과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자기표현의 욕구가 높은 현대인에게 한복은 ‘개성 표출’의 도구인 셈이다. 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은 SNS 공유를 통해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다.
생활한복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소재·디자인도 다양해졌다. 소재는 관리하기에 편리하도록 변화했다. 전통 한복의 원단으로 사용되는 양단과 물실크 외에 세탁이 손쉬운 면·마·데님과 같은 실용적인 소재로 제작한 생활한복을 찾을 수 있다. 디자인적으로는 체크·플라워 패턴 등 현대적 그림이 더해졌다. 또 전통 한복은 속바지부터 속치마, 겉치마, 속적삼, 저고리, 포 등을 갖춰 입었다면 생활한복은 치마저고리로 간추려졌다. 형태로는 묶고 풀기 힘든 고름을 빼고 단추를 단 저고리, 허리에 치마끈을 둘러 입을 수 있는 허리치마, 치마 위에 풍성하게 겹쳐 입을 수 있는 원피스 한복 등이 있다. 길이는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발목 길이에서 무릎 길이로 짧아졌다.
현대적 디자인이 더해진 한복은 일반 옷과도 잘 어울려 직장인의 출퇴근 복장으로도 사용된다. 일반 블라우스에 한복 허리치마를 입거나 목까지 올라오는 니트를 입고 원피스 형태 한복을 입으면 멋스럽다. 모던한복 브랜드 하플리의 이지언 대표는 “한복은 상체가 밀착되고 하체는 풍성한 하후상박 구조이기 때문에 하체가 비교적 통통한 사람, 차분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인기”라며 “일반 레이스 원단 상의에 자연스러운 굴곡이 있는 한복 치마를 믹스 매치한 스타일이 직장인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디자인만 보고 생활한복을 구입하면 자칫 덩치가 커 보일 수 있으므로 직접 입어보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 처음 생활한복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저고리 구입에 주의해야 한다. 모던한복 브랜드 때때롯살롱의 예광호 과장은 “저고리는 조이는 부분이 없어 잘못하면 가슴 부분이 뜰 수 있으므로 착용 후 이를 확인해야 한다”며 “이때 똑딱단추를 활용하면 옷맵시를 다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복 디자인 특성상 안에 입는 속옷에도 신경 써야 한다. 전통 한복을 입을 경우 저고리 안에 가슴 가리개를 입어 저고리와 치마 사이에 드러난 살을 가렸지만, 가슴 가리개가 없는 캐주얼 한복을 입을 땐 소매가 없는 여성용 내의인 캐미솔을 입으면 유용하다. 속옷 브랜드 비비안의 강지영 디자인팀장은 “순면으로 된 캐미솔을 입으면 땀 흡수에 도움이 되고 한복 원단에 살이 쓸리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글=라예진 기자(rayejin@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각 사례자 제공
http://mnews.joins.com/article/22367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