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밖 모델은 어떤 모습일까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저 벽부터 이 앞까지 천천히 걸어 오세요!” 모델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걷는다. 벽 귀퉁이마다 포즈를 취하는 모델과 이를 촬영하거나 구경하는 사람들로 웅성웅성하다. 화려한 조명, 세련된 배경음악, 높은 무대는 없지만 서울패션위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서울 을지로7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 ‘거리 패션쇼’ 모습이다. 이 행사는 패션 업체가 진행하는 게 아니다. 쇼를 마치고 나오는 모델 또는 이를 보기 위해 모인 모델 지망생과 미디어 관계자, 패션 블로거 등이 꾸미는 그들만의 무대다. 지금까지 거리감 있는 무대를 바라보는 관람객으로 참여했다면 이제는 모델과 가까이에서 대화하고 사진을 찍는 ‘스트리트 패션’ 참여자로 나서는 건 어떨까.
“대충 입고 패션쇼에 오냐고요? 절대 아니에요. 정말 신경 많이 써서 스타일링해요. 서울패션위크가 시작될 때 모델들이 아마 옷을 제일 많이 살 거예요. 많은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죠!”
지난 19일부터 24일까지 DDP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에서 만난 한 모델이 웃으며 말했다. 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모델에게 DDP는 일터다. ‘패션쇼에 올 땐 아무 옷이나 입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델들의 대답은 “무심한 듯 은근히 멋을 낸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누구나 자유롭게 모델 촬영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패션쇼가 열리는 DDP 바깥 거리에 나서면 또 다른 무대가 펼쳐진다. 바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진행되는 ‘스트리트 패션’ 현장이다. 이는 서울패션위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세계 4대 컬렉션(파리·밀라노·뉴욕·런던)에서도 모델과 일명 ‘패피’(패션 피플)를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형화된 패션쇼와 구분되는 새로운 형태의 패션 문화다. 이 중엔 런웨이에 서기 위해 패션쇼 장으로 향하거나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모델도 있어 눈길을 끈다. 일상복을 입은 모델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구나 콘텐트를 만들고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스트리트 패션은 더욱 힘을 얻는다. 7~8여 년 전에는 개성 있는 스트리트 패션을 촬영해 올리는 ‘사토리얼리스트’ ‘페이스 헌터’ 같은 패션 블로그가 인기를 끌었다. 요즘은 전문 블로거뿐 아니라 일반인도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에 모델 사진을 실시간으로 올리며 스타일링을 공유한다.
포즈를 취하는 곳이 무대가 되는 ‘스트리트 패션’ 문화는 모델에게 꾸밈없이 대중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정호 세종대 글로벌지식평생교육원 모델학과 교수는 “모델은 런웨이에선 의상을 돋보이게 하는 예술가·마케터이고 거리에선 자신만의 의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패션 인플루언서”라고 설명했다.
독특한 디자인 영감 떠올라
무대 밖에서 모델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스트리트 패션의 매력으로 모델의 평소 옷차림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패션을 전공하는 학생과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려는 의류업계 종사자 외에 대부분의 사람은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평상복으로 입기엔 부담스럽고 디자이너의 예술적 표현이 난해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은 유명인사가 입은 옷 역시 쇼 디자이너가 제공한 것이라면 같은 느낌을 받기 쉽다.
거리에서 만난 모델은 자신들이 구입한 옷을 착용했기 때문에 일상 패션을 엿보기에 좋다. 서울패션위크에서 ‘유저’ 패션쇼를 마치고 만난 모델 진정선은 무대 위 차가운 모습과 달리 베이지 색상의 버킷 햇에 연한 청바지, 하얀 티셔츠, 검정 재킷을 입어 개구쟁이 소녀와 같은 스타일을 연출했다.
무대를 마치고 거리에 나온 모델 정지선과 주노.
그녀는 “사람들은 내가 시크한 옷 스타일을 선호하는 줄 알지만 평소 여성스러운 옷도 잘 입는다”며 “올봄엔 팬톤이 지정한 올해의 색상 보라색 시폰 소재 원피스를 즐겨 입을 것 같다”고 말했다.
‘빅팍’ 무대에 선 모델 차수민은 폭이 넓은 진한 청바지 위에 연한 청재킷을 걸치고 거리에 나섰다. 재킷 안에는 화려한 패턴의 티셔츠를 입어 포인트를 줬다. 그녀는 “평소 상의와 하의 색상을 맞추거나 비닐처럼 보이는 PVC 소재 의상이 편하고 멋스러워 즐겨 입는다”고 말했다.
남성 모델로는 ‘오디너리’ 쇼를 마치고 나온 주노와 유리를 만났다. 주노는 바지와 가방, 그리고 헤어밴드까지 검정으로 맞추고 하얀 프린트가 들어간 검은색 코트를 입었다. 그는 “올 블랙 패션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하얀 색상 패턴이 있거나 소매 끝 또는 밑단에 살짝 다른 색으로 멋을 낸 재킷을 주로 고른다”며 “비니 모자의 위 부분을 가위로 오려내 나만의 헤어밴드를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모델 유리는 후드티 위에 큼직한 가죽 재킷을 입어 경쾌한 분위기를 냈다. 그는 “아디다스와 샤넬이 협업한 신발, 노스페이스와 슈프림이 함께 만든 가죽 재킷 같은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주로 구입한다”고 알려줬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스트리트 패션은 주류 패션과는 다른 독특한 스타일을 제안한다. 또 기성 패션이 재구성되는 새로운 창구로 진화하며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정구호 헤라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은 “디자이너와 모델은 물론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가 꾸미는 스트리트 패션은 현장 밖 무대를 즐기는 문화 축제로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사진=김동하
[출처: 중앙일보] [라이프 트렌드] 패션쇼 진짜 재미는 '패피' 모인 무대 밖
http://news.joins.com/article/22478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