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이혼, 별거 아닌 별거의 시작

작은 작업실로의 이동

by 라연

일주일을 휩쓸고 간 폭풍이 드디어 잠잠해지고 있다. 내일부터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전환점답게 지난 며칠간 많은 변화가 몰아쳤다. 어제는 남편과 이혼 합의를 마쳤고, 오늘은 미뤄왔던 세무 상담을 다녀왔으며, 내일은 작업실로 거처를 옮긴다. 별거 아닌 별거의 시작이자, 사실상 이혼이 시작된 셈이다. 우리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므로 주거 분리가 곧 이혼의 실질적 절차다.


이혼 합의는 예상치 못한 순간, 불쑥 찾아왔다. 어떻게 이 말을 꺼내면 좋을지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했건만, 이야기는 예고도 없이 튀어나왔고 대화는 당혹스러울 만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나는 내가 왜 혼자가 되려 하는지 차분히 설명했다. 남편은 몇 가지 방안을 되물었지만, 결국 내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었다. "네가 이상한 게 아니다. 내가 잘못했고, 너를 이해한다.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다."라는 남편의 말은 내게 구원과도 같았다.

그 말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오자, 남편은 허락을 구하듯 안아줘도 되냐고 물었다. 부부 사이에 나온 질문이라기엔 너무 조심스러워서 마음이 아렸다. 그는 나를 방임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며 오랫동안 나를 안아주었고, 나 역시 당신을 바꾸려 해서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그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처음 내가 사랑했던 그의 모습, 관계가 다 끝나고 나서야 돌아온 다정한 그 사람을 보며 어쩌면 무언가가 우리를 여기까지 떠밀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는 물 흐르듯 정리가 이어졌다. 아이 양육과 내 거취 문제 등 실질적인 논의를 오늘까지 마무리했다. 예상대로 남편은 재혼 생각이 없으며 아이는 끝까지 책임지고 키우겠다고 했다. 나는 주말마다 아이를 보러 가고, 필요할 땐 언제든 돕기로 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원수가 되어 헤어지는 게 가장 두려웠는데, 다행히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는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작년 말, 남편은 본인이 대출을 받아 내 남은 대출금 2억 원을 갚아주겠다고 몇 번 제안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필요한 만큼의 돈은 받은 상태였기에 거절했다. 남편의 여윳돈이었다면 받았겠지만, 2%대인 대출을 5%대의 대출로 대환하는 방식은 너무 비합리적이었다. 어차피 아이에게 갈 돈이니 손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고, 그때는 이미 헤어질 결심을 한 상태라 불편한 마음이 무엇보다 크기도 했다.

지금의 남편과 마주 앉아보니, 아마 그건 좋은 이별로 이어지기 위한 필연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 또한 자산은 묶여 있고 현금 융통은 빡빡했던 상황에서, 나를 위해 추가 대출까지 감수하며 내 짐을 덜어주려 했던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는 아마 오늘이 올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없어도 잘 지낼 수 있겠냐는 물음에 남편은 잘 모르겠지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그 솔직하고 담담한 대답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지만, 울지 말라는 그의 말에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남편은 내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정한 호의는 내가 이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 할 분명한 이유가 되었다.


나와의 결혼이 남편에게 상처만 남기게 된 게 아닌가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하지만 내가 아니었으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덕분에 많이 배우고 달라졌다며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나는 남편이 주었던 가정적인 헌신과 자산가의 아내라는 안정감 덕분에, 생존에 급급했던 자아에서 벗어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수 있는 여백을 얻을 수 있었다.


만나야만 했던 우리의 부부로서의 인연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이제는 공동육아 파트너라는 다음 단계로 접어든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게 될까. 일단 이 글을 쓸 것이고, 이후에는 전에 했던 혹은 또 다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게 되든지, 나의 진심이 누군가의 마음에 온전히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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