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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소리

by 유현우

하릴없이 빌 에반스 트리오 재즈만 들을 수밖에 없다. <포레스트 검프>는 이미 시곗바늘이 오후 다섯 시 반을 가리킬 즈음 막을 내렸다. 연신 빌 에반스 트리오를 고집하고 있다. 영화 시작하기 전까지 얼마나 잠에 들었을까. 눈을 감아도 잠이 쉽게 들지 않기에 드는 의문이다.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얼마나 먹어댔을까. 배가 얼마나 불렀는지 입으로 방귀를 뀌어댄다. 고통스럽다. 나는 여전히 밥 먹은 뒤 고통을 느끼면서도 밥 먹는 중에 숟가락을 쉽사리 놓지 못했다. 1962년 짐 홀의 아련한 기타와 그의 저리는 피아노 소리 이후 영원히 떠나지 않을 줄 알았던 줄지은 추억의 대상들이 연거푸 떠났음을 알리는 1971년 전자 피아노 소리 덕분에 귀는 즐겁고, 마음은 저리다. 이어지는 둥둥거리는 베이스 소리에 몰입해 본다. 둥 둥 둥 둥. 어느새 1982년. 둥 둥 둥둥. 무중력 상태. 나의 귓전을 울린다. 부딪힌다. 한 박자 한 박자 얇디얇은 한 장의 고막이 찢길 듯 말 듯 다가와 부딪혀 본다. 잠에 든 것인가. 닫힌 방 문 너머로 엄마의 머리칼을 말리는 헤어 드라이기 소리가 위잉 위잉 들린다. 편안하다. 곁에 있음을 알기에 편안한 것이다. 그토록 오랜 죽음을 기다렸던 빌 에반스. 그러한 그는 함께 연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독했다. 그런데도 함께였다. 잠에 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발바닥이 전부 마르지 아니한 채 방바닥 위를 걷고 있는 엄마의 삶소리를 자장가 삼은 채 잠에 들었다. 빌 에반스 트리오는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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