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변하고 기억도 변하지만, 좋은 것으로만 남기를.
우래옥 평양냉면과 불고기를 처음 맛 본 건 아마도 20년도 지난 어느 봄날, 블로그라는 게 생겨 사람들이 쓴 맛집 글을 읽다가, 어, 이거 먹고 싶어, 해서 찾아갔던 우래옥 대치점에서였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평양냉면이란 걸 제대로 먹어보지 않았고 다만 오랜만에 어릴 적 먹던 불고기용 불판에서 구운 불고기가 먹고 싶었습니다.
고풍스러운 디자인, 왠지 연배가 많은 손님들, 약간 잘못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를 안내 받았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넓은 지하 방에 나란히 놓여 있는 테이블, 왠지 오래된 한국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메뉴판을 받고 잘못 찾아온 게 맞나 싶은 생각은 점점 굳어졌습니다. 당시 냉면 값이 8천원이었고 불고기는 2만원인가 했던 거 같은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서른 살 초반의 애기 아빠가 고르기엔 쉬운 가격 대가 아니었으니까요. 이럴 때 허세가 나옵니다. 일단 먹자 뭐.
냉면은 사기 그릇에 담겨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죠. 평양냉면은 스댕 대접이거나 놋 대접이 대부분인데 이 집은 사기 그릇이거든요. 뭔가 낯선 거 같기도 하면서 익숙한 거 같기도 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유명한 거야, 하면서 대접을 들어 국물을 마시는 순간, 엑, 하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게 무슨 맛이야?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빨리 흔들었습니다. 여기는 아니다, 그런 신호였지요.
게다가 불고기라는 건, 손바닥만한 접시에 나오는 게 왜 이렇게 비싼지, 그 때는 1인분 주문이 됐던 거 같은데(지금은 1인분은 주문도 안 받습니다) 한 젓가락 들어 먹고 나니 없어졌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그 돈이면 다른 데서 훨씬 좋은(정확히는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우래옥이라는 이름을 지웠습니다.
12, 3년은 지났을까, 이번엔 다른 손님들과 우래옥을 찾았습니다. 한 분이 예약까지 했다니까 안 갈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가서 먹은 냉면과 불고기는 세상에서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습니다. 아니, 평냉은 그렇다치고 이 집 불고기가 이렇게 맛있었다고? 세월이 제 입맛을 버려놓은 것입니다(!).
우래옥 대치점은 없어졌습니다. 일터도 강남에서 을지로로 옮겼고요. 우래옥 본점을 찾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때에 비해 손님 연령대는 엄청 다양해졌고, 기계로 대기 번호를 받아야 했으며, 줄서는 사람도 너무 너무 많았습니다. 식당 분위기는 어째 큰 변화가 없는 거 같은데 냉면은 여전히 사기 그릇에 나오지만 곱배기 메뉴가 생겼고, 불고기는 2인분 이상을 주문해야 했습니다. 가격은 여전히 비싸고 영수증을 받으면 헉,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도 잘 먹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나온 배를 두드리며 차를 빼서 나옵니다. 여전히 대기 손님이 있고, 주차 아저씨들은 분주합니다. 세월도 변했고 입맛도 변했고 손님도 변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기억은 변하지 않았고 음식은 맛있었습니다. 그저 이런 날들로 살아가기를, 혼자서 평냉을 즐기는 손님을 보며, 나도 저렇게 즐기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14도라는 따뜻한 3월의 기운과 따갑게 내려쬐는 햇볕에 눈을 감는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