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르게 변화했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가상화폐 등 10년 전만 해도 SF영화에서나 상상해볼 법한 일들이 일상에 등장한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수혜는 모두가 누리고 있지 않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불평등, 그것은 돈이 돈을 낳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다.
나는 잠시 외국인 노동자였던 적이 있다. 호기롭게 호주로 짧은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는데, 거기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어떤 할머니가 내 면전에 대고 엄청나게 센 발음으로 욕을 씨부린 것이다. 내용은 못 알아들었는데, 반 이상이 Fxxk 소리였다. 하지만 많이들 겪는 일이고, 특히 심각한 일도 아니었다. 화는 났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 얼마 전 읽은 기사는, 김 양식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고 했다. 김 양식업에는 근로자 수가 적은 사업장이 많은데,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을 보장받지 못한다.* 아파도 대충 진통제 먹고 일한다고 한다. 내가 겪은 인종차별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어떨까? “외국인들은 GDP 순서대로 서열화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같은 흑인도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과 미국에서 온 흑인이 받는 시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의 저변에는 경제적 불평등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가난한 국가 출신이라는 것이 차별의 근원 중 하나였다.
코로나19도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빈곤층이 거주하는 곳에서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 영국에서는 가장 빈곤한 지역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하는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두 배 높았다고 하고,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비율이 다른 인종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고 한다.* 빈곤층의 경우 병을 앓는 인구비율이 부유층보다 높고, 주거환경이 밀집되어 있거나 대가족인 경우가 많아 바이러스 유행에 더욱 취약하기 때문이다. 소득 불평등은 건강 불평등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옥스팜에서 발표한 「불평등 바이러스」 보고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손해를 극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비교했다. 억만장자는 9개월 만에, 빈곤층은 10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안 그래도 힘든 사람들은 얻어맞기도 더 많이 얻어맞았는데, 피가 멈추기까지도 오래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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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도 마찬가지다. 홍수, 가뭄 등의 자연재해는 저소득층에 더 가혹하다. 계층 간 불평등뿐인가. 기후변화의 결과는 국가 사이에서도불공정하다. 현재의 선진국들은 산업혁명 이래 자국의 발전을 위해 화석연료를 열심히 태우며 발전해왔다. 이전에도 살펴봤듯, 지구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에너지와 자원은 선진국에서 쓰고, 대부분의 폐기물과 온실가스도 선진국에서 나온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의 원인은 대부분 부유한 국가가 제공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결과는 선진국만 골라서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난한 국가가 피해를 짊어질 것이다. 경제평화연구소(The Institute for Economics and Peace, IEP)는 기후난민이 가장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로 파키스탄, 에티오피아, 이란 등을 꼽은 반면,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아일랜드 등의 국가에는 거의 위협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즉, 기후변화가 가세하면 가난한 국가들은 더욱 경제적 기회가 부족해질 것이다. 아까 GDP에 따라서 차별이 심화된다고 했던가. 기후변화는 불평등을, 불평등은 차별을 불러올 일만 남았다.
기후변화 이후는 어떨까? 김기창 작가는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에서 기후변화를 직격탄으로 맞은 미래의 세상을 구현했다. 인간은 하늘에 커다란 돔을 덮은 '돔시티'를 구축했다. 섭씨 70도까지 올라가는 세상에서 인간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리고 인종, 민족, 종교, 재산, 교육 수준, 전과 등 모든 조건을 고려해서 거주자와 추방자를 분리했다. 최선을 다해 편을 가르고, 배제하고, 차별했다. 생존이라는 이름 하에 윤리는 경시되었다. 사회가 개인의 생존을 결정했고,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방관했다. 갈등은 심화되고, 불평등은 극대화되며, 부와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희망도 체념해야 했다. 기후변화는 체념이 쉬운 이들에게 더욱 체념을 강요했다.
기후변화가 방아쇠를 당겨 윤리가 무너진 세상이었다. 차별과 혐오, 불평등이 잔인할 만큼 심화된 모습은 지나치게 비관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현실적이었다. 기후위기가 극에 달하고, 생존이 가장 우선적인 가치가 된 상황에서 평등을 선택하기 어디 쉬울까. 우리 곁에 차별과 불평등은 항상 존재해왔고, 위기상황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은 너무 쉽게 드러난다. 극단적 환경에서 인간이 선택하기 가장 쉬운 문제해결 방식은 차별과 배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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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더욱 걱정되는 건, 우리가 위기 앞에서 뭉칠 줄 아는 존재라기보다는 불안해하며, 싸우고, 죽이고, 빼앗는 나약하디 나약한 존재들이란 것이다. 지금 이 풍족하고 평화로운 시대에도 나눌 줄 모르는데, 그 때라고 공생이라는 단어를 생각이나 할까. 우리는 감사할 줄 모르고, 나눌 줄도 모르고, 펑펑 쓰고 버리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탄소 배출도 멈춰야 하지만, 불평등도 멈춰야 한다.
호프 자런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에서 풍요를 나누지 못하는 우리를 책망한다. 정말 큰 문제는 지구의 유한함이 아니라 나눌 줄 모르는 우리의 무능함이라고. 미국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20%가 먹을 수 있는 상태라고 하는데*, 2020년 전세계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기아의 수는 8억 1천만 명에 달했다는 이 대조적인 상황에서 통감할 수 있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선진국에서 자원을 펑펑 써댄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의 피해가 더 클것이며,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한테 더 치명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구를 사용하는 사람 다르고 대가를 받는 사람 다른 상황이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의 ‘돔시티’에서도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도, 나름대로 타협된 방식을 찾아 죄책감을 상쇄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서사를 통해 작가는 시니컬한 시선 속에 질문 하나를 던지는 듯했다. 삶을 차별하는 사회가 구성원 간의 신뢰를 쌓고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게 과연 지속가능할까?
*주하은, "이주노동자의 눈물로 길러진 한국의 '쇼핑템 1위'", 시사인, 2021.09.22
*박민영,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북트리거, 2020년
*안희경, 『오늘부터의 세계』 메디치, 155쪽
*이근영, "코로나 손실 회복 '억만장자는 9개월, 빈곤층은 10년 이상 걸려", 한겨례, 2021.01.25
*Jon Henley, “Climate Crisis could displace 1.2 billion people by 2050, report warns”, The Guardian, 2020.12.04
*호프 자런,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김영사, 2020년, 111쪽
*「The State of Food Security and Nutrition in the World」 FAO, 2020년, p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