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를 지킨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지구는 우리가 살기 좋은 지구를 의미한다. 만약 환경파괴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없었다면, 우리는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말의 이면에는, 현재 인류가 적응해 생존하고 있는 환경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인류가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토양이 오염되고, 동식물이 병들고 사라져도, 결국 최종적인 피해는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 다다른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것이 문제다. 우리가 거대한 피해를 보고 급격한 변화를 겪을 것이기 때문에. 기후변화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정확히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기후변화로 인해 어떻게 달라질까? 재해나 생물다양성과 같은 자연적 영향 말고, 사람은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기후변화는 극단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이 어떻게 변해갈지 걱정해야 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생존이 위협되는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패닉한 상황에서 인간의 선택이 궁금했다. 그리고 기후변화가 정신적인 맥락에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기후전쟁』*이라는 책은 사회심리학자가 환경적 재난이 어떤 사회적 재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에서 발생한 분쟁이 대표적인데,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기후전쟁이다. 당시 다르푸르는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가뭄이 심했고 사막화로 인해 목초지가 급격히 감소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과 목초지를 두고 대립하던 유목민과 농민들의 갈등이 심화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충돌이 수십만의 사상자를 낼 정도로 피해가 컸던 건, 유목민과 농민이라는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민족, 종교적인 갈등이 혼재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전쟁은 '인종청소'라는 잔인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여기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폭력이 아주 심각한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생존에 대한 위협, 불안이 심각한 상태
2) 사회적 갈등상황
첫번째, 생존에 대한 위협은 자연재해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인해 나타난다. 생활환경이 파괴되고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폭력을 선택하기 쉬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최근, 10년 전 강진으로 무너졌던 아이티에 또 다시 강진이 덮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뒤이어 들리는 더욱 안타까운 소식은 폭력조직의 행패로 구호물품 배분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10년 전에도 같은 뉴스가 보도되었다. 생필품, 식량, 담배, 술 등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빼앗기 위해 싸움이 벌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물과 식량 같은 기본적인 자원이 부족해지고 개인의 생존이 직접적으로 위협 받는 상황에서, 폭력은 너무나 선택하기 쉽다. 일상의 사회를 통제했던 규칙은 무너졌고, 폭력을 통하면 필요한 자원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데, 여기서 도덕과 윤리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힘, 권력, 부 등 단순하게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가치가 사회적 기준이 될 수 있다.
두번째, 사회적 갈등상황은 민족 간, 국가 간, 세대 간, 계층 간 갈등 등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갈등 상황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존 경쟁에 갈등이 더해지면 폭력적인 상황에 불을 붙일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갈등이 존재하던 지역에 기후변화로 인한 생존 위협이 더해진다면 더욱 심각한 폭력상황으로 악화될 수 있다.
ㅡ
갈등이 무서운 것은 집단 간 '편 가르기'를 통해 폭력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상대집단에 대한 배제와 멸시를 통해 아군의 소속감을 높인다. 나의 생존을 위해 상대의 생존은 최하위의 가치가 부여되며, 상대를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다. 형체 없는 분노가 상대를 향하고 니편내편을 가르는 선이 뚜렷해진다. 점점 상대에 대한 폭력성이 폭발하면서 충돌이 심화된다.
편 가르기는 상대에 가하는 폭력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쟤네는 맞아도 싸고, 폭력은 우리 집단을 위한 숭고한 결정이 된다. 상대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한 폭력과 살인은 정당한 일이 된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인간은 객관적 현실보다 지각된 해석을 통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합리화는 집단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하랄트 벨처는 '홀로코스트'라는 극단적인 사례를 말하는데, 이 사건이야말로 집단적으로 대학살을 합리화하고 동의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에 대한 학살이 사회 전반에 당연시될 정도로 그 행위에 대한 합리화가 집단 전반에 퍼져 있었고, 이러한 변화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벨처는 이렇게 말했다. "단 몇 년이면 족하다."(306) 실제로 학살에 가담했던 사람들도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만 하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폭력은 선택하기 쉽고, 합리화는 폭력을 정당화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나오는 전사(워보이)들은 적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저 명령에 따라 싸우고, 죽음으로 희생하는 것에 환호한다. "기억해줘!", "기억할게!"라며 소리치던 모습이 맹목적이고 순수하면서도 한심하고 착잡했던 기억이 있다. 현대사회도 어떤 계기로 견고한 제도와 규칙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누구나 폭력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일상이 크게 달라지는 일을 겪게 된다면 과연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인간의 판단은 언제나 절대적이지 않다.
나는 기후변화가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단 한 번도 현재의 안온한 일상이 파괴될 것이라고 제대로 가정해본 적이 없다. 전쟁, 빈곤과 같은 국가적 사태는 물론 골목길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폭력 상황도 익숙하지 않다. 솔직히,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폭력을 선택하기는 너무나 쉽고, 폭력이 당연한 분위기로 사회가 바뀌는 것도 쉽다는 사실은 더 이상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깨달음을 준다.
기후변화도 두렵지만, 이로 인한 인간의 선택 또한 두렵다. 요즘은 특히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세상이라서 더욱 그렇다.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호구가 되고, 이익을 조금 더 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크게 바쁘지도 않은데 방금 도착한 지하철에 탑승하기 위해 사람들 어깨 밀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 기분이 나쁘면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적은 후배 사원한테 함부로 말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신도 챙겨야 한다. 지금처럼 남 탓하기 좋고, 힘과 권력이 칼을 들기 쉬운 때에 외부적인 자극이 추가된다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지 두렵다. 우리나라는 안 그래도 무역의존도가 높고, 식량자급률도 낮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식량가격지수는 가장 높은 수준을 상회하는데,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50% 이하로 전체 식량의 절반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당장 내일 어떤 극단적인 폭력사태가 나타나고, 한순간에 재난영화 같은 상황이 펼쳐지지는 않겠지만, 어떤 최악의 상황이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해두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의 인식이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문제 가능성의 인식은 대비의 첫걸음일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윤리를 기억할 수 있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하랄트 벨처, 『기후전쟁』 영림카디널, 2010년
*이해곤, “[식량 공포]쌀 빼고 다 수입…식량자급률 늘려야”, 이투데이, 2021.05.02.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