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속가능한 일상을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마주친 세 가지 문제에 대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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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1. 무력감 - 개인의 역할에 대해 낙관하기
인스타그램에 '#선한영향력'을 검색하면 22만 개의 게시글이 나온다. 사람들은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단 한 명에게라도 작은 위로와 포옹을 건넬 수 있다면, 사소하더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선한 영향력'이다.
이 생각이 사회라는 거대한 덩어리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단어엔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작은 변화에 감사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스스로 실천한 작은 행동이 미칠 수 있었던 '선한 영향력'에 기뻐하고, 그 작은 행동을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이 또 다른 사람에게 미치고, 그렇게 작고 작은 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는 것. 나는 힘 없는 한 사람일 뿐이지만, 개인이 전체를 바꾸기는 정말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나 한 명의 행동에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네트워크의 힘은 1명이 n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서 나온다.
긍정적인 가치를 전파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때면, 큰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내가 옷 한 벌 안 사기로 기꺼운 결심을 했을 때, 전세계 곳곳에서 나와 같은 결심을 한 사람이 수두룩빽빽하다면 그 땐 이제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옷 한 벌 안 사기로 결심한 건, 단순히 소비 한 번 참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현재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그리고 우리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관심을 갖게 되고 더 궁금해진다. 폐기물이 얼마나 많이 버려지고,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미세플라스틱이 얼마나 인체에 유해한지 찾아보고 왁자지껄 떠들게 된다. 그 목소리가 커지면, 그때가 비로소 한 뜻으로 모인 개인이 기업과 정부,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시점이 아닐까.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의 힘은 그렇게 작지 않을지도 모른다. 호프 자런의 『우리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역할을 비중 있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호프 자런은 우리가 전세계 모든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세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큰 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OECD 회원 국가, 즉 선진국에 거주하며 깨끗한 물과 맛있는 밥을 먹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호프 자런이 제시하는 데이터는 다음과 같다.
OECD 회원국 국민들은 전세계 인구의 15%에 지나지 않는다.(110)
하지만 사용하는 연료는 전세계의 40%, 사용하는 전기는 전세계 생산량의 50%를 소비하고 있다.* 반면, 인도와 사하라 이남 지역의 사람들은 전세계 인구 중 3분의 1이나 되지만, 사용하는 전기는 전세계 생산량의 10%도 못 미친다. (126)
OECD 회원국 국민이 배출하는 배설물이나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유기 폐기물은 전세계의 30%를 차지한다.(110)
OECD 회원국은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분의 1, 전세계 육류 소비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248)
여기서 꼬집는 건, 풍요로운 시대에, 풍요로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든 것들이 마르지 않는 샘인 것처럼 여기며 펑펑 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과소비의 주범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변하면 꽤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영향력은 전세계 인구 70억분의 1보다는 훨씬 크다. 적어도 3인분은 할 듯.
나는 나무젓가락 여러 개가 모이면 부러지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다. 티끌 모아 태산, 투표 한 장의 힘을 믿는다. 어디선가 스치듯 봐서 출처를 말할 수 없는데, 누군가 그랬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 없이는 바뀌지 않을 거라고. 개인이 뭘 한다고 해서 큰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참여 없이는 그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결정적인 역할은 아니지만 배제할 수 없는 역할이다. 우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게다가 우리, 3인분은 한다며.
그래, 나는 고작 이 글 하나로 대한민국을, 세상을 통째로 바꾸지는 못 하겠지만 글을 읽고 계시는 단 한 분의 생각에 잔상으로라도 남아서 아주 작은 영향력을 미칠 거라 기대하고, 그거 하나를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문제2. 돈 - 기업과 정부에 요구하기
돈 문제를 통해서는 오히려 ‘소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삶에서 소비생활은 아주 큰 축을 차지하는 부분이고, 완전한 중단을 요구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은 뼈저리게 알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 우리의 소비생활 또한 지속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지구를 지킨다는 뜻도 있지만, 그 속에는 내 삶과 생활의 지속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즉,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대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기업의 역할이다.
『플라스틱 바다』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에서부터 알다시피 이 책은 바닷속의 엄청난 플라스틱과 그 영향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하지만 작가가 한 얘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기업의 책임을 묻고, 기업의 행동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글을 쓰는 나로서는 참 눈길이 가는 의견이었다.
작가는 제조사들이 제조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은 실컷 버리고, 효율과 이익만 따져가며 제품을 생산하고는, 판매 이후엔 나몰라라 하는 모습을 규탄한다. 플라스틱 제품을 잔뜩 생산한 제조사는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도록 독려했으며, 제품의 폐기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폐기물은 소비자가 세금을 들여가며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라', '재활용하라'는 멘트가 넘쳐나는 것 또한 이 넘쳐나는 쓰레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고 지적한다.
작가는 기업들에게 제품 생산 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요구한다.*
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가
오래 쓸 수 잇는가
보수 관리 없이도 튼튼한가
사용 후 100% 원자재의 형태로 처리 가능한가
생물학적으로 독성이 없는가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춘 제품들을 우리가 SPA브랜드에서 옷을 사듯 살 수 있게 된다면, 편의점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된다면, 큰 가격 차이가 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왜 이런 제품을 사지 않겠는가? 나는 지속가능한 선택지를 더 많이, 더 자주, 더 싼 가격에 볼 수 없는 사실을 두고 화를 내야 했었다. 더 착한 제품을 위해 지갑을 못 여는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더 지갑을 열어야만 지속가능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면, 기업들이 지금 지속가능한 제품이 얼마나 필요한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발빠른 대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들이 만들어낸 많은 제품에 대해 책임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수하지 못하고, 재활용이 불가능하며,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제품을 제작하지 않도록 생산자의 책임을 확대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달리고 있는 삶의 쳇바퀴는 시민이나 기업, 그리고 정부 그 어느 하나만 나서서 멈출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지속가능한 선택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한 제품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더 움직이고, 더 제시해야 한다. 생분새성 원료 개발, 폐기물 회수 및 재활용 순환 시스템, 온실가스 감축, 유해물질 배출 관리, 제품 내구성 증진 등등 이런 노력들이 아주아주 많아져서 우리 집 근처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면, 우리는 수월하게 지속가능한 소비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들이 많아지고 지속가능한 제품도 많아지면, 가격대도 다양하고 선택지도 많아질 것이다. 지속가능한 선택이 보편적인 선택이 되어야 한다.
문제3. 죄책감 - 못 해도 된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에는 ‘영혼과의 논쟁'이 등장한다. 채식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 개인이 노력해봤자 뭘 바꿀 수 있겠냐는 회의감. 함께 일으킨 변화가 너무 거대해서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한다는 무력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 너무도 공감되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내가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을 발견했다.
“단지 숫자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가족, 독특한 성벽, 공포증, 알레르기, 좋아하는 음식, 반복되는 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노래, 자기만의 지문, 독특한 웃음을 지닌 개인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정답은 이거였다.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고, 한 명 한 명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 일단 태어난 모두가 소중하고, 이 소중한 삶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지구도 지켜야한다는 것. 이게 내가 하는 노력의 이유이자 목표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삶을 지속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우리가 지속가능한 일상을 시도하는 것이 힘이 든다면, 이건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바꿔가면서 겪는 시행착오다. 하지만 그게 내 존재가 잘못됐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똥을 쌀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고, 똥을 싸도 괜찮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지속가능한 일상'을 완벽하게 실천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중요한 건 오래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적당히 할 수 있는 만큼 타협하면서 해야 한다. 마라톤을 뛰어야 하는데, 누가 처음부터 100m 달리기하듯 전력질주를 하나? 잘 못해도 괜찮으니 천천히 오래가자.
나는 언제일지 모를 죽음이 두려울 때, 우리 모두가 가장 낙관적인 가정을 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죽음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아무도 당장 내일 죽을 거라고 가정하지 않는다. 삶은 내가 원하는 한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오늘 심어야 할 사과나무를 열심히 심어야겠네. 어차피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살아가는 게 삶이 아닌가.
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나의 최선이다. 그렇다면, 그게 얼만큼의 결과를 가져오든 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내 노력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일단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무언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주는 만족감에 가만히 집중해보자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내가 노력한다고 달라질 게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하기엔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너무나도 의미 있다. <겨울왕국2>에서 엘사와 올라프를 잃고 절망에 빠진 안나가 다시 일어서며 부르는 노래가 있다. "Just do the next right thing"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이다.
- 톨스토이, 『인생의 길』 중에서
*호프 자런,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김영사, 2020년.
*찰스 무어, 카산드라 필립스, 『플라스틱 바다』 미지북스, 2011년, 412쪽
*조너선 사프란 포어, 『우리가 날씨다』 민음사, 2019년, 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