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중단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실제로 옷을 일절 구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실천해보기도 했고,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은 절대 이용하지 않았으며, 중고거래를 활용했다. 그리고 브런치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느꼈던 패션의 과소비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미 포화 상태인 쓰레기장, 넘쳐나는 플라스틱들과 더불어 당신이 하루동안 만들어내는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바라보았으면 했다.
그렇게 소비를 자제하자고 외치기 시작했는데, 소비는 생각보다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줄이지 못하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나 스스로 여러 혼란을 겪게 되었다.
(주의: 자책과 걱정, 우울, 무력감이 잔뜩 열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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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무력감과 함께 근본적인 의심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노력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나 하나 옷 안 산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나 하나가 노력해봤자 뭐가 바뀌겠어. 나는 너무나 작고 작은 개인일 뿐이고, 나 하나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이 사회에 비해서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
많은 기사와 책이 얘기하는 건 비슷했다. 심각하다고. 누군가는 이미 늦었다고 한다. 우리는 많은 탄소를 내뿜었고, 당장 모든 걸 멈춘다 해도 지금까지 내뿜은 것만 해도 지구 기온을 산업혁명 이전보다 2도 가까이는 올릴 거라고.
자료를 보다보면 읽는 것만으로도 무력해져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기도 했다. 지구가 얼마나 빠르게 뜨거워지고, 우리는 왜 그것을 막을 수 없는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기를 쓰고, 고기를 먹고,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태어나보니 세상이 이렇게 생겼는데 억울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나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인데, 혼자 애써봤자 나만 힘든데, 뭐가 달라지겠어. 옷도 안 사려고 해보고, 플라스틱 포장재가 나오는 게 신경 쓰여서 모든 음식을 포장해오려고 낑낑대보기도 하고, 고체치약과 고체샴푸를 사보고. 일단 폐기물을 줄이려고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쌓여 있는 쓰레기봉투를 쳐다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더라.
우리는 이미 늦었는데. 심지어 늦은 줄도 모르고 더 노력할 생각도 없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나는 왜 노력해야 하지? 왜 피자와 햄버거를 먹고 싶은 욕망을 힘들 게 참고, 왜 플라스틱을 쓰지 않으려 난리법석을 피워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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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번째, 돈 문제다. 내 취향과 내 (금전적) 조건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챙기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적당한 제품을 찾기 위해 검색을 거듭하다 보면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죄책감에 새 제품 살 생각도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기도 하고 남들은 잘만 소비하고 살아가는데 나만 생각이 너무 많나 싶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의 『쓰레기 거절하기』에는 스키복을 사고 싶은 딸이 지속가능하면서도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스키복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는 과정이 나온다. 격하게 공감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중고거래를 몇 번 실패하고 나니 스트레스가 쌓였다. 중고거래는 어렵고, 지속가능한 선택지는 부족하고, 당장에 필요하긴 하고. 이러한 상황들에 결국 일반적인 신발을 사야했을 때, 없는 와중에 찾아내려고 조사하고 고민했던 시간이 억울했고, 힘들었다.
한번은 잠옷이 필요해 오가닉 코튼을 검색했다. 오가닉 코튼. 잠옷 브랜드 중에는 오가닉 코튼 인증을 받은 브랜드가 있었는데, 일반 옷 중에서는 내가 적당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 없었다. 바지 하나에 15만원은 되어야 해외 제품을 살 수 있던데. 내 지갑에 대한 미안함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제품이 없다는 게 참 실망스러웠다. 물론, 일반 제품보다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가격대가 오르는 것도 당연히 안다. 잘 알지만, 내 지갑사정도 중요한 걸.
아니, 사실 나한테 더 직접적인 문제는 지갑 사정이다. 많은 소비자에게도 그렇다. 작년에 선거가 있었는데,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였던 정당은 단 한 개뿐이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중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부딪힌 문제 중 충분히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지나친다. 그리고 각자의 안위에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뽑는다.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는 사회에, 바쁘고 힘든 인생이기에 모두가 조금 더 여유롭게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게 당장에 중요한 문제니까. 이런 상황에서 ‘모두 소비를 자제하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까. 지속가능한 소비, 가능한 일일까? 이제는 잔뜩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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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죄책감이 커졌다. 내가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쓰레기에 대해 무거운 죄책감을 느꼈다.내가 어제의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 않고 오늘의 블라우스를 사지 않아도 내일 친구들과 외식 한번에 나오는 쓰레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웠다. 삼각김밥 하나 먹어도 나오는 비닐들에, 마트에서 장을 보면 스티로폼이 쏟아진다. 과자 하나 사먹으면 플라스틱에 갖가지 비닐이며 종이 쓰레기들이 나오고. 이런 걸 보고 있자면 참 괴롭다. 에버랜드 가고 싶다, 그 생각 한번 했다고 커다란 에버랜드를 움직일 에너지 소비량부터 걱정하는 난 이제 마음 편한 일상생활은 못 하는 거였다. 나는 너무 많은 생각과 죄책감에 지쳐감을 느꼈다. 이거 정말 스트레스가 꽤 크다. 어리석은 고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대답 없는 질문만 외치고 있는 느낌이라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한없이 땅굴을 팠다. 이 정도면 그냥 인간의 존재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닌가. 진짜 지구를 위하려면 내가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닌가. 지구뿐일까. 내가 먹고 자고 싸느라 오염되고 뜨거워진 지구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한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사는 사람들. 안 그래도 나보다 맛있는 거 못 먹고, 나보다 따뜻한 옷 못 입고, 나보다 안락한 곳에서 지내지 못하는 그 사람들이 피해는 다 받아내야 한다. 설령 그 대가가 그들의 죽음일지라도. 나는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굶지 않고, 춥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것에 감사했다. 그런데 이 풍요가 죄악처럼 느껴졌다. 지구에게나, 사람에게나.
내가 내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들이,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거였다. 심지어 인간까지도. 내 존재 자체가 지구를 망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내 존재가 내 존재의 존속과 반한다는 이 아이러니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