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글만 적어내리다 문득, 상냥한 문장이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작한다. 느린 시선으로 적는 산문.
1
여기 서울살이 8년차인 지방사람이 있다. 열아홉, 자기가 어른이 된 줄 아는 어린이가 조용하고 느긋한 일상을 떠나 시끄럽고 바쁜 도시를 만났다. 우뚝 솟은 빌딩숲들은 위엄이 넘쳤고, 익숙하게 바쁜 걸음을 옮기는 서울 사람들은 세상 잘나보였다. 내가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고, 이렇게나 거리에 사람이 많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오랜 시간 꿈에 그리던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서울 여기저기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대학가 술집은 물론, 운치 있는 고궁과 성곽길, 그 유명한 신촌, 홍대 등등 온갖 곳을 돌아다녔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던 아이는 어느새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두루두루 서울에 발자취를 남겼다.
서울살이 8년차가 된 이 시점에서 나를 돌아보았다. 학생 때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벌점을 준다는 학교의 협박도 무시해가면서 서울시민이 되는 걸 피했는데, 졸업하고 혼자 살게 되니 세입자의 권리를 챙겨야 했다. 결국 서울 시민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무늬만 서울 시민이 아닌 듯하다. 20대의 대부분을 여기서 살았으니, 난 서울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흡수하며 성장했다. 나는 이제 알맹이도 서울의 태가 났다. 만원 지하철에서 내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순진한 아이는 이제 나의 하차를 위해서라면 단호하게 비집고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루는 동생과 다퉜다. 밤에 샤워를 하는 것이 배려가 없는 것일까, 자제하는 것이 지나친 배려인가 하는 문제였다. 난 내가 샤워하고 싶으면 그만이지 그다지 크게 시끄럽지도 않을 거 굳이 자제해야 할 이유가 있냐고 주장했다. 동생은 그런 배려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그렇게 서로 배려하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거라고 했다. 그 사려 깊은 마음씨에 나는 울컥, 오기가 치밀었다. 배려 따윈 안중에도 없고 내 안위 챙기기에만 바쁜 내 모습을 감추고 싶어서. 제 발이 저렸다.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뼛속 깊이 박혔다. 난 여전히 내가 샤워하고 싶을 때 샤워하고 싶은데, 어쩌나. 괜히 서울 탓을 해본다. 나에게 바쁘고 정 없는 삶의 방식을 잔뜩 묻힌 서울 탓.
2
나는 이 바쁜 도시에서, 조금은 아등바등 사는 편이다. 원래도 걸음이 빠른 편이었지만, 이젠 걷잡을 수 없는 정도다. 혼자서 걸을 때면, 차마 느긋하게 걸을 수가 없다. 내가 쉬는 시간을 확보하든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을 확보하든, 이동시간만큼은 줄여야 하는 대상이었다. 혼자서는 밥도 해먹을 수가 없다.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먹고 치우는 그 모든 과정은 엄두를 내기조차 힘들다. 엄마는 내가 잘 챙겨먹지 않아서 속상해하지만, 나에게 혼자 하는 식사란 소모적인 일이다. 가능한 한 간단히 먹어야 효율적인 것. (아이러니하게도 성격은 극도로 외향적인 탓에, 사람을 만나면 입맛이 돌아서 무척 잘 먹는다.) 아, 글자도 차분히 못 쓰는구나. 항상 휘갈겨쓰느라 나조차도 헷갈린 글자들이 튀어나온다. 아무튼 이런저런 모습을 뜯어보면,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나는 현재의 나보단 미래를 챙기기 바쁜 듯하다. 나도 참, 나 사는 거에 관심이 없었다.
거슬러 올라가니,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인 듯하다. 국영수 잘하는 법은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떠올릴 수 없었던 때. 코피 터지도록 열정적으로 공부하진 않았지만, 순수한 공부시간을 늘리는 것에는 꽤나 주의를 기울였다. 이동시간, 밥 먹는 시간, 샤워하는 시간처럼 공부할 수 없는 시간들을 셈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제 내 시간은 공부하는 시간과 공부하지 않는 시간으로만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여유롭다는 대학생 때조차도 비슷했다. 우선순위만 달라졌을 뿐, 먹는 건 여전히 대충, 걸음은 여전히 바빴고, 글씨는 더욱 휘날렸다. 그리고 일을 시작했고, 심적 여유는 더 희박해졌다. 걷다 못해 뛰어야 할 것 같고, 밥은 거르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3
언제인가부터 본가가 위치한 지방도시에 도착했을 때, 공기의 흐름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바쁘고 날선 분위기에서 조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시골에 마련하신 집에 방문했다. 조용했다. 창밖엔 산자락 무성한 나무들이 보였고, 듬성듬성 놓인 주택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울의 하루하루가 아득했다. 이곳에서는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해먹고, 산책을 다녀오고, 책 한권 집어들어 한참을 집중했다가, 다시 밥을 짓고, 좋아하는 영화 한편을 들여다보며 저녁을 즐기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이 가능할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고 오롯이 나를 챙기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왜 지금은 이런 일상을 보낼 수가 없는 걸까, 고민이 되었다. 지금은 하루 여유롭게 지낼 수 있는 판을 깔아줘도 머릿속이 시끄러워서 못 지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미래만 바라보는 이 시간감각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나보다. 난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가 참 속상해하시는 걸 봐서라도, 여전히 귀찮지만, 노력해봐야 할 것 같다. 현재의 나를 챙기는 일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나는 지금 일을 하거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이 최우선일 뿐, 현재의 나는 전혀 돌보지 않고 있다. 밥도, 잠도, 걸음걸이도, 글씨를 쓰는 것도 하루하루 지나치는 일상의 자투리로 여길 뿐이었다. 미래를 위해봤자 현재의 나는 지나가면 영영 놓칠 텐데.
좀 더 여유롭게 마음 먹어보기로 했다. 오늘 꼭 많은 글을 써야 하고, 오랜 시간 운동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조금씩 오래, 천천히. 바쁜 서울에서 느릿한 시간을 되찾아가보자. 느린 산문으로 하루하루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하면서. 사각사각 써내려가는 글자 하나하나의 모양도 꾸며보면서. 작은 날벌레 한 마리를 좇아가는 시인의 시선처럼, 일상을 새삼스럽게 바라보려고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