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깨달았다. 난 글을 쓰는 것도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 내 인생의 스펙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느린 시선으로 내 인생의 면면을 바라보기로 했는데, 글쓰기조차 바쁜 인생에 구겨넣고 있었다. 내 글을 좋아해주고 감탄해주는 분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 미래를 기대했기 때문에 내 글에 화려한 포장을 씌워버렸다. 내 글쓰기는 경건하지 않았고, 먼 훗날의 가능성을 셈하며 기대를 부풀린 탓에 속물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동안 내 글은 자료를 뒤적거린 결과물이었다. 궁금했던 내용들을 직접 정리하는 일은 몹시 뿌듯한 일이다. 특히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 읽고, 갖다 붙이고 하는 모든 과정은 생각보다 허울이 좋았다. 형광펜으로 밑줄 쫙쫙 긋고, 메모도 하고, 포스트잇도 덕지덕지 붙여놓고 하면 꽤나 똑똑한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열심히 공부했던 내 노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 속에는 지적 허영심 가득한 모습도 조금은 있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결과물은 흐뭇했고, 난 내 글을 자랑스러워했다.
글 하나가 튀어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글은 바쁜 글이었다. 책과 논문, 해외 기사, 원문 보고서들을 읽는 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글 하나에 품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빠르게 흐르는 세상 이야기다보니, 한번 사용한 데이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오래된 자료가 되었다. 2019년에 썼던 글은 이미 3년 전 데이터니까. 난 아직도 글을 쓴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나는 내가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음, 글은 쓰고 있었을지 몰라도 문장을 쓰고 있지는 않았다. 그동안 내 글은 정리였지, 표현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내용을 체계적으로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을 뿐, 어떻게 하면 좋은 문장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진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상냥한 문장이 쓰고 싶어졌을 때, 세상이 아닌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 세상 팩트란 팩트는 모두 취합하고 정리하는 글보다 나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인용을 그만하고 싶었다. 각주의 그 작은 숫자에는 내가 근거를 자신 있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소심함과 이걸 표시하지 않으면 표절이 되고 말 거라는 불안감이 달랑달랑 달려있다.
나를 말하는 글은 훨씬 짧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는 느리게 튀어나왔다. 형용할 수 없이 뒤엉킨 감정 덩어리를 단어로, 문장으로,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고작 조사 하나에 집착하며 이랬다 저랬다 갈팡질팡했다. 그 미묘한 차이 속에서 저울질하는 게 은근한 쾌감이 있었다. 허공을 계속 쳐다보며 머릿속 사전을 헤집기도 했다. 사전도 뒤지다 보니 유의어 찾는 데에는 국어사전보다 영어사전이 더 탁월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재밌는 아이러니.
오늘은 마음 크게 먹고 밀린 냉장고 청소도 하고, 쌓인 설거지도 해치우고, 물때 낀 화장실도 청소하고, 방바닥도 닦았다. 뿌듯해서 구구절절 적는 게 맞다. 이 정말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쓰는 일이 무척이나 아까워서 항상 미뤄만 댔는데. 하찮음이 핑계인지 게으름이 핑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동안 쓸고 닦다가 마무리하고 일어났는데, 문득 피아노가 치고 싶어졌다. 몇 곡 뚱땅댔다. 그러자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 쓰고 있다. 운동을 하는 게 뇌를 자극하고 집중력을 향상시킨다더니.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는 시간에 집중해보기로 다짐한 게 생각보다 많은 장점이 줄줄이 달려오는 것 같다. 내 게으름이 쪼그라든다든지,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가 된다든지. 나 스스로에게 지긋한 시선을 던질 수도 있고. 오, 나 지금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있는 것 같다.
집안일 잔뜩 하고 느릿느릿 문장을 적는 건 생각보다 배부르다. 오늘도 저녁 늦게까지 바쁜 하루였고 마음이 조급했는데, 이 새벽에 이렇게 느긋할 수가 있나. 나 이제 샤워를 할 건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샤워오일로 씻을 거다. 온 몸이 깨끗해지고 향기로운 순간을 만끽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