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문장

by 희량

좋아하는 작가님이 있는데, 그분의 문장은 분명 디지털 화면에 정자로 새겨진 것인데도 깔끔한 글씨체로 꾹꾹 눌러적은 듯하다. 신중하게 단어를 고른 흔적이 느껴지고,

그분의 다정하고 사려 깊은 마음이 아로새겨져 있다. 이분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붕 떠올라 허공을 부유하는 생각들이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이렇게 차분하게 적어놓은 문장을 보면 참을 수 없는 부러움이 밀려온다. 브런치 곳곳에서 활발히 글을 써내려가는 많은 작가님들의 문장들이 그렇다. 그리고 내 문장 사이사이의 성급함이 떠올라 부끄러워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고 보잘 것 없는 글을 자주 그리고 꾸준히 내보내자는 다짐을 했다. 너무 완전한 글만 브런치에 내보내려는 의무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의무감은 성큼성큼 내딛고 싶은 발걸음을 무겁게 붙잡는다. 그 무게는 글과 글 사이 긴 공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문장 사이의 성급함과 글 사이의 공백은 다른 이야기다. 전자는 내가 얼마나 문장을 돌보는지에 달려 있고, 후자는 내 성실성의 문제다. 전자는 충분한 퇴고를 거치지 않고 서둘러 가시적인 성과를 보고 싶어하는 욕심이고, 후자는 꾸준히 쓰지 않는 게으름이다. 위에서 말했던 날 붙잡는 의무감은, 문장 하나를 살뜰히 쓸고 다듬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분량과 주제의식에 대한 것이다. 나는 완벽주의가 아니다. 그래서 얼기설기 문장을 엮어 글을 내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글은 쉽게도 쓰고 어렵게도 쓴다. 일기에는 온갖 속어와 줄임말도 섞어쓰고, 문장은 하루하루 쉽게도 만들어내는 것이 참 친근하고도 만만하다. 그래서일까, 글은 존중하기 어렵다. 장인이 재료를 손질하고 엮고 짜고 다듬는 오랜 과정을 존중하듯, 문장 하나를 짜는 일도 마찬가지인데. 문장 하나를 썼다 지우고, 차마 채우지 못해 한참을 고민하고, 단어 열 가지를 늘어놓고도 고르지 못해 끙끙거리고, 조사와 어미 하나로 갈팡질팡하고, 문단 하나를 통째로 날려도 보고. 이 지난한 제조의 과정을 지긋이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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