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면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기와 어울리는 업으로 세팅되는 것 같다. 내게는 그게 글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얼 보고 듣고 읽든 자꾸만 쓰고 싶어질 리가 없다. 생계유지의 수단이 되든, 여가시간을 채우는 취미가 되든, 글이 내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임은 분명하다. 이제 골똘히 쓰고 기록하는 것은 나의 정체성이다. 평생 그러고 살 테니. 그래서 글쓰기 자체를 의심한 적은 없는데, 글쓰기에 대한 능력은 너무도 쉽게 의심하게 된다.
요즘엔 평일의 습작 때문에 고민이 많다. 내 글은 과연 좋은 글인가?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보고 항상 외치듯이 ‘와,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 하며 감탄하게 만드는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내 글은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갈까? 아무도 긍정하지 않을까봐 두렵다. 내 글에 대해 뿌듯함은 느껴도 자신감은 느껴본 적이 없다.
어제 실컷 평일의 습작을 쓰다가 안담 작가님의 글을 보았다. 애인에 대해 쓴 글인데, 애인을 바라보는 작가님만의 특별한 시선을 특별한 언어로 내놓았다. 글을 읽으며 수없이 웃고 감탄했다. 작가님의 글은 위트 넘치고 재미 있었다. 가볍고도 진중했고, 사랑스러우면서 존경스러웠다. 뭐랄까, 문어와 구어를 넘나들고, 공식적인 언어와 비공식적인 언어를 자유자재로 섞어쓰면서 작가님만의 통통 튀는 문장을 짓는 느낌? 마침 나도 사랑하는 친구들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는데, 내 글은 많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았다. 여러 번의 감탄사 끝에 글을 다 읽고 친구에게 말했다. “내 글이 부끄러워…”
항상 사랑하는 작가님들이 미웠다. 이슬아 작가님도 밉고, 정희진 작가님도 밉고, 안담 작가님도 밉고, 일일이 열거하지는 못하나 내 책장을 빼곡히 차지하는 작가님들도 밉고, 인스타그램으로 멋진 글들을 보여주는 작가님들도 미웠다. 내 글을 개발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누군가 노력한 결실만 부러워하는 것이라 그 미움조차 부끄러우나 어쩔 수 없다. 그들의 재치와 센스와 문장력과 사려깊음과 색다른 시선과 생각들이 너무 질투가 나는 걸. 작가님들은 알지도 못할 텐데 혼자 열렬히 사랑했다가 미워했다가 바쁘기 그지없다.
이 질투는 영원히 해소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글이 영원히 부끄러울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열광하는 정희진 작가님도 한 책의 서문에서 “진심으로 나는 내 글이 부끄럽다"고 쓰셨다. 이미 많은 책을 내셨는데도. 설령 한 권의 책도 출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작가님의 글은 매번 강렬한 울림을 주는데 부끄러우시다고! 나는 감히 흠조차 찾지 못하는 놀라운 의견과 신념과 문장으로 가득한 글인데. 그래, 그렇다면 글에 대한 끊임없는 검열과 부끄러움과 자신없음은 평생 마주해야 할 숙명일지도 모른다. 정희진 작가님조차 부끄러움을 고백하신 걸 보면 분명 그렇다.
그러나 내가 중요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를 이렇게 위로한다. 내가 존경하고 경애하는 글 쓰는 당신들 모두 이런 고민을 거쳐갔을 거라고. 자신 없어하고, 갈팡질팡하고, 부족이 탄로날까 두려워하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을 거라고. 그 고뇌를 등지고 섰기에, 지금 그렇게 감탄이 절로 나오는 갖고 싶은 문장들을 꿰어내는 거라고. 그 시간을 거치고도 여전히 부끄러움을 마주하고 있다면, 그 부끄러움은 내가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부끄러움일 것이다. 나도 옛날에 느꼈던 부끄러움과 지금 느끼는 부끄러움은 질감도 깊이도 다르다.
그래도 내가 잘한 건 평일의 습작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매일의 글쓰기는 매번 곤혹스럽고, 공개할 때마다 조마조마한 부끄러움을 극복해야 하지만, 계속 쌓아간다는 것 그 자체로 중요하다. 매일 글을 짓겠다고 뇌에 힘을 주다 보면, 작문을 맡은 어떤 대뇌피질이 점차 빛날지도 모르는 일이다(뇌과학 모름). 씨앗에 물을 주면 아무도 모르게 싹을 틔우는 것처럼. 그렇게 능숙함과 특별함을 나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자꾸만 잊는데, 이건 습작이다. 결과물이 아닌 과정. 각각의 글로 평가 받고자 함이 아니라, 쓰고 구성하는 행위에 꾸준히 시간을 들이는 것이 목적이다. 숙명과 같은 부끄러움도, 습작이라 괜찮다. 어쩌면 서툴기에 용인되는 어떤 사랑스러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기대할 것은 이렇게 매일 글을 쓰면서 변해갈 글쓰기와의 관계다. 내가 과연 글쓰기를 더 좋아하게 될지, 또는 더 싫어하게 될지. 즐기게 될지 고통을 안고 가는 법을 알게 될지. 시간이 흐른 후에 점차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