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가 결혼했다. 학교 다니며 자주 어울렸던 친구다. 정신줄 놓고 다니며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많다. 분명 그랬었는데 언제 다 커서 결혼을 하니! 물론 나보다 나이는 많은 친구긴 하지만, 우린 분명 결혼이라는 어른의 관문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이만큼 와있다.
결혼식장에서 옛날에 한참 어울리던 낯익은 얼굴들을 하나둘씩 만났다. 너무 자주 봐서 흔한 얼굴도 있었고, 굉장히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어제 본 것 같은 얼굴도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익숙해서 반가웠지만, 동시에 다들 말쑥한 모습이 묘하게 낯설었다.
다들 차도 하나씩 끌고 왔다. 결혼식이 끝나고 몇 대의 차에 나눠 흩어지는 모습을 보니 비로소 복잡미묘한 기분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어른이 된 걸 실감한 이상한 기분. 우리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지하철과 버스로 열심히 막차 시간 찍어가며 버틸 때까지 버틴 사람들 아니었나. 동아리방에 추리닝 차림으로 널브러져 있던 모습이 지나치게 선명하단 말이지… 괜히 서운하고, 괜히 뿌듯했다. 옛날과의 거리감을 실감해 일종의 상실감도 느낀 것 같지만, 의젓한 성장을 목도하니 우리가 자랑스러웠달까. 우리가 이만큼이나 자랐어…!
이렇게 어른들이 모였다. 바쁜 현생을 사느라 자주 만나지 못하는 어른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빠릿한 자들이 널따란 펜션을 빌려놓았다. 이십대 후반에 엠티를 즐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부풀었다. 그제야 내가 그동안 시끌벅적했던 옛날을 그리워했음을 떠올린다. 친구들과 스무 명 모이는 게 이상하지 않았던 그때. 단체활동을 향유하는 것이 권리와도 같았던 그때.
술과 고기와 과일과 과자와 함께 왁자한 저녁을 보냈다. 수박도 쪼개먹고, 고기도 구워먹고, 라면도 끓여먹고, 일단 엠티의 기본은 다했다. 거기에 와인과 조개전골에 칼국수에 닭발까지… 다들 맛은 알아가지구. 메뉴 선정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풍족을 넘어선 과잉이라 마음 한 켠이 무겁기도 했지만, 졸업과 코로나를 거치고 만난 정말 드문 날이니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하고 싶었다. 지구든, 미래의 나든, 미래의 세대든.
우린 모든 시간을 충만하게 채웠다. 저녁에는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를 풍미했던 온갖 케이팝을 불러제꼈다. 그땐 일요일마다 인기가요 시청하는 게 일이었어서 안무들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정쩡하게 춤을 춰가며 음주가무를 부지런히 즐겼다. 처음엔 펜션에 노래방 기계가 없어서 아쉬워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다들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웃어대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열창했다. 개판이었다. (개들이 뛰어노는 것처럼 천진난만하고 활기찼다는 뜻이다.^^)
밤에는 단란하게 모여앉아 두런두런 담소도 나눴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이십대 후반~삼십대 초반들은 금방 지쳤기 때문이다. 동아리의 미래와 지속적인 운영 방법 등등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고, 일 얘기, 사는 얘기, 재미난 얘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밤이었다. (feat. 프라이머리) 새벽 세시에 누워서 하루를 회고했는데, 친구에게 즐거운 순간만 무수했다고 말했다. 정말로 그랬다. 하나하나 되짚어보아도 모든 장면이 환하고 빛났다. 사람이 많으니 크고 작은 웃음이 겹쳐서 즐거움이 점점 증폭하는 것 같았다.
오래 알던 사람들은 귀하다. 무언가 숨기고 참고 꾸미지 않아도 된다. 나대고 싶은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도 웃어주는 사람들. 회사에서는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 숨기고 참고 꾸미느라 애썼는데, 여기서는 그저 편안했다. 물론 원초적인 재미에 파묻힌 나머지 성급한 말이나 행동을 내놓아버렸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대강 품어주고 넘겨주었을 것 같아 안심도 되었다. 고마운 사람들!
사실 그날, 비가 많이 와서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사고가 난무한 날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 가득한 하루를 즐겼다는 게 죄송스러울 지경이었는데, 그저 진심으로 애도하되 깊이 감사하기로 했다. 이마저도 지나가버릴 테니, 소중한 순간은 찰나라도 세게 쥐어봐야지. 아주아주 세게.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시간이 아니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일상을 열심히 일궈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복적이고 지겹고 하기 싫은 일상을 끈덕지게 보내야 가끔씩 찾아오는 이런 꿀 같은 순간을 더 극적으로 맛볼 수 있을 테니. 지극히 중독적인 시간이라 자꾸만 더 바라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중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