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평습 다 쓰는 게 목표였는데, 실패했다. 이유는 인터넷 소설 읽느라… 15년 만에 옛날 인터넷 소설 한 편을 붙잡고 읽어봤다. 온갖 이모티콘이 난무하는 그 ‘인소’ 말이다… 시대적 배경은 무려 2001년이었고, 주인공은 폴더 폰을 들고 나왔으며, 오락실에 가서 그놈의 보글보글을 하며 놀았다. 진짜 유치뽕짝해! 읽는 중간 중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완독 후에는 이걸 다 읽고 말았다는헛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는 못 읽겠다.
그래도 읽는 동안엔 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인소에는 넘쳐흐르는 진심들, 우정과 사랑 같은 낭만 어린 감정이 있었다. 사랑은 일편단심이고, 우정에 죽고 사는 이 청년들은 얼마나 이상적인 삶을 사는가. 공부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고는 쥐똥만큼도 하지 않는 철부지 등장인물을 보면 해방감도 느꼈다. 어렸던 내가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였다. 인소에는 현실을 모르기에 설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순수함이 있었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모두 어리고 순진했겠지. 어쩌면 의도적으로 현실을 벗어났거나. 어쨌든 이 철없는 이야기를 밤새 읽으며 두눈을 반짝반짝 빛냈던 내 어린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이제는 못 읽겠다고는 했지만 앞으로 종종 찾아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가슴 떨려하며 읽었다는 게 웃기기도 하고, 그 순수함이 그립기도 해서 말이다. “와, 그땐 이걸 멋지다고 생각했네…” 하는 어처구니 없는 감상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띄어쓰기마다 등장하는 이모티콘(--^, -0-, ><)은 괜히 창피해서 죄다 지워버리고 싶었고, 일진 미화나 수동적인 여성상, 강요와 강제가 쉬웠던 그 시절 남자 주인공들, 이야기 전개를 위해 여성의 학대 장면을 노출시키는 것 등 지금은 동의할 수 없는 흐름이 너무나 많았다. 인터넷 소설은 특히나 온갖 클리셰가 뒤범벅된 장르인데, 대체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구하고 박력 있게 이끌고 틱틱거리고 쉽게 대하는 내용이 많다. 내가 그걸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도 많이 읽었던 탓에 당시 내가 기대한 연애는 현실보다는 조금 더 왜곡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인소에 파묻혀 청소년기를 보냈던 탓에 이십대 초반, 페미니즘을 만난 내가 얼마나 큰 괴리를 경험했던지. 청소년기에 구성된 로망은 온몸을 구석구석 관통하고 있었고, 비현실적인 연애관을 세웠다.
연애 초반에는 마중과 배웅에 집착하는 편이었다. 언제나 애인이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길 바랐다. 페미니즘을 알고 공부하고 나서는 치밀한 마중과 배웅을 원하는 스스로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페미니즘은 독립적인 여성을 말하는데 나는 한없이 애인한테 기대고 싶어했으니까. 나를 한심히 여기면서도, 여전히 애인의 마중과 배웅을 바라는 마음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내가 페미니즘을 외쳐도 될지, 그 자격을 자문한 적이 무척이나 많았다. 인소와 함께 자란 소녀는 로망만 덕지덕지 붙은 연애관을 가지고 있었고, 현실의 연애를 하며 현실의 감각을 겨우 되찾았다. 무수한 싸움과 토론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도 더 깊고 크게 이어갔다. 이제는 마중과 배웅에 엄청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오밤중의 거리와 어두운 골목에서는 애인이 함께해주길 바라지만, 예전엔 로망 때문이었다면 요즘엔 생존을 위한 필요에 가깝달까.
하지만 나는 인터넷 소설을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여성으로서의’ 소심함, 수동성을 극복하지 못했을 뿐더러… 이제는 웹소설로 넘어가 여전히 이성애로 점철된 로맨스 서사를 매번 읽고 있으니… 가끔 신물이 나기도 한다. 인물(남녀)의 관계가 ‘성공적인 결말’을 맞으려면 꼭 결혼이라는 제도에 골인해야 하는 기승전결, 여성과 남성이라면 눈만 마주쳐도 섹슈얼한 신호가 오가야 할 것 같은 그 지독한 개연성이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왜 남녀의 만남은 로맨스로만 풀어내야 하는지. 그러나 여전히 나도 이 강력한 이성애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자주 깨닫는다.
최근에도 통렬히 자각했는데, 인스타그램에서 밴드 새소년의 보컬(생물학적 여성)과 베이시스트 사진(생물학적 남성)을 보았을 때였다. 사이 좋은 이들의 모습을 보고 내심 꿀 떨어지는 로맨스를 바라는 나를 발견했다. 보컬 황소윤 님이 여성에 대한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해주고, 베이시스트 박현진 님도 남성에 대한 내 취향을 은근하게 맞춰준 덕분에 잠깐, 아주 잠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겠지만, 그래선 안 됐다. 이들의 관계는 일종의 비즈니스고, 아마 우정을 기반으로 할 것이고, 새소년의 노래를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듣기 위해서라면 그들의 로맨스를 바라선 안 됐다. 이들의 성 정체성도 성적 지향도 모른 채 이성애자일 거라 가정하며 로맨스를 바라선 안 됐다! 여성과 남성 둘이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이에 섹슈얼한 모먼트가 피어날 것이라고 여겨서는 절대로 안 됐다! 아… 나는 얼마나 편견 가득한 생각을 떠올린 것인가…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위처: 블러드 오리진>을 봤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여성과 남성이 같은 대상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동료가 되는 장면이 나왔다.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것도 인소 제목 중 하나다ㅋ)’ 같은 흐름이다. 나는 이 둘이 제발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길 바랐다. 등을 맞대고 싸울 수 있는 동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든든한 관계이길 바랐다. 가족과 부족에 대한 원수가 같다는 걸 깨닫고 든든한 동지가 된 그들 사이에 어떤 섹슈얼한 애정도 피어나지 않길 바랐다. 남성과 여성이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사랑이 싹튼다는 그 뻔한 이야기가 너무도 지겨웠으니까. 결국 그 둘이 키스했을 때 난 얼마나 실망했던가. 인소에 열광했던 아이는 이제 로판 웹소설을 보면서 로맨스를 지겨워하고, 이성애의 권력을 지적하면서도 뼛속깊이 적응해있는 모순적인 어른이 되었다.
그놈의 로맨스는 환상적인 삶의 필요조건과도 같나 보다. 그게 아니라면 하트시그널인지 뭔지 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이렇게나 성행할 리 없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심한 것 같기도 하다. 이성애에 대한 환상뿐만이 아니라, 하나보다 둘이어야 한다는 강박이랄까. 나도 홀로 고고한 모습을 앞장서서 보여주고도 싶지만, 이미 뜽귱의 귀염지옥에 빠져버려서 탈출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제 나한테 로맨스는 로망이 아닌 현실이다. 협상과 토론을 거치고, 비난과 포용을 오가는 치열한 일상이다. 다른 누군가가 독신의 완전함을 보여줄 거라 기대하며, 나는 인소로부터 차근히 빌드업해온 국내 소녀들의 로망에 현실을 끼얹어주는 역할을 해야겠다. 그래도 현실은 차디차진 않고, 미지근한 정도는 하는 것 같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