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소시민의 이야기

by 희량

오늘의 글은 특히나 자기고백적이다. 내가 언제나 마주하는 모순과 타협과 검열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늘 다짐과 반성을 반복하고, 성공적으로 신념을 지켜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통렬히 실패를 자각한다. 이제 내가 얼마나 무심한 페미니스트인지, 얼마나 부족한 채식지향인인지, 지구와 사람을 살리는 일에 얼마나 소극적인지 털어놓아보겠다.


나는 지독히도 모순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모든 생명에 위협이 되고 배기 가스를 온종일 내뿜는 자동차는 절대 끌고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도, 하루는 여성의 활동 범위와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운전을 배우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하루는 연애와 결혼에 동의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하루는 연애와 결혼을 당연스레 수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율배반적인 세상의 모든 꼭짓점이 나를 찌르고 뒤흔들지만, 나는 중심을 유지할 줄 모른다.


막쾌가 요즘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꺼내는데, 옆에서 마음의 무게가 점점 묵직해지는 걸 느꼈다. 재작년에 한참 열심히 채식을 하려 시도했다가 결국 포기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심지어 내 글은 행동을 촉구하는 글도 썼는데 나는 그렇게 쉽게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나약하기 그지 없다. 위선의 극치다. 내 의지는 정말이지 심각하게 얄팍했다. 그래서 막쾌가 채식을 지향하게 위해 신중하게 알아보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얼마나 성급했고 쉽게 결정했는지 알아차리게 되더라. 나는 채식을 저렇게나 무겁게 여겼었나? 내 채식의 무게가 들통나버렸다. 가벼운 채식은 끈기도 없는데 무엇보다 타협이 쉬웠다.


그래, 타협이 쉽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채식에 대한 단단한 마음이 점점 풀려갔던 건 회사 다닐 때 다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나 혼자 채식을 고집하기엔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괜히 불편해질 바엔 적당히 하자… 이 타협이 결국 내가 미끄러지는 데 한몫 하고 만 거다. 지구를 위한 일도 그렇다. 제로웨이스트를 하겠다며 간이정수기도 사고, 알맹강점 같은 리필스토어를 기웃거려본 적도 있다. 샴푸바도 써보고, 고체치약도 써보고. 그러나 결국 생활의 불편함에 손을 들고 말았다. 사람이 이렇게 찍어먹기만 하고 도망가도 되는 거야? 그리고 정말 악독한 고백을 꺼내보자면, 포기가 가져온 편리는 거부할 수 없이 중독적이었다…


그런데도 막쾌를 비롯해서 독서모임을 함께하는 분들은 항상 나의 비겁함과 나약함을 토닥여주신다. 내 버릇이 더 나빠지면 어쩌시려구…!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불완전해도 되는 건 끊임없이 갈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채식을 포기한 주제에 미련만 가득 남아서 여전히 힐끔거리고 있단 말이지. 어느 하루 한 끼를 채식에 성공했을 때 혼자 흐뭇해하던 마음, 편의점에서 고기만큼은 외면하려 시선을 회피한 갸륵한 마음은 분명히 선명했다. 변명 같아서 가까스로 고백하는 거지만, 우리는 계속 스스로 검열하고 반성하는 게 더 쉬운 사람들이라 동시에 옹호하고 지지해줘야 하는 거다. 내 부족함을 나도 비웃고 있기 때문에…


완전무결할 수 없음을 수용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어릴 때는 어른의 타협이 비겁하다 여겼지만, 그 타협이 비겁함조차 아우르는 일이라면 용기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실패를 감히 포장하려는 건 아니다. “나도 힘들었어!” 따위의 적반하장식 변명도 아니다. 그냥 어제의 실패와 오늘의 실패를 직면하고, 내가 또 타협하게 되더라도, 내가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비겁한 사람일지라도 그냥 계속해보는 것 있잖아… 진짜 흔한 소시민의 이야기.


나는 여전히 부족한 페미니스트고, 더 부족한 채식지향인이고, 더 더 부족한 환경관심인(?)이다. 환경운동가라고 자칭하지도 못하는 저 모자란 자신감을 보라. 나는 목소리를 크게 낼 자신도 없다. 시위하고 외치는 사람들처럼, 인스타그램에 지속적인 콘텐츠를 올리는 분들처럼 강하고 꾸준한 목소리를 낼 자신이 없다. 난 서글플 정도로 내 얄팍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정없이 흔들리는 얇은 목소리더라도 가늘고 길게는 내어볼 수도 있겠지. 애인인 뜽귱이 ‘절대 못 헤어지는 사이’보다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지만 헤어지지 않는 사이’가 더 강력한 연결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지만 수많은 타협을 직면하고 모순을 겨우 극복했을 때 더 유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거다. 내가 미친듯이 흔들리는 모습도 ‘이렇게도 나약하지만 가끔은 해낸다’는 메시지로 누군가에게 더 강렬하게 가닿을 수도 있다고…


모순-타협-검열-극복을 이 시대의 새로운 기승전결로 한번 밀어보겠다. 누구도 수용 가능한 스토리텔링…! 성취까지의 과정이 힘겨울 수밖에 없다는 걸 털어놓는 거다. 수월한 공감을 바라본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당신보다 나약한데 조금씩이라도 해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슬쩍 건네는 거지. 하지만 내 이야기가 의미 있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다. 1) 계속해야 한다, 2) 꾸준해야 한다, 3) 결국 해내야 한다. 난 어제도 실패했고, 오늘도 실패하고, 내일도 실패하겠지만, 내일 모레 또 해보겠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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