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종종 떠오를 때마다 이불을 발로 뻥 차는 기억들이 있다. 흔히 ‘흑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부끄러운 순간들 말이다. 나는 특히나 망각이 쉬운 인간인데, 흑역사는 잊혀지지도 않고 선명하게 기억 속에 콕 박혀 있다. 잊을 만하면 떠올려서 여러 번 덧그린 그림처럼 진하다. 쓰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꺼내고 있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부끄러움의 물살을 겨우 헤치고 거슬러서 적어내고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막내쾌녀한테 깊은 마음 속 골짝에 있던 은밀한 감정을 퀘스트처럼 꺼내놓곤 했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을 처음으로 바깥에 내보내기 위해 막쾌를 빌렸다. 마치 숨겨둔 기억은 세상에 꺼내놓아야 경쾌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어떤 미션과도 같이 ‘오늘은 이 얘기를 꺼내봐야지!’하고 다짐하곤 했다. 이참에 나의 이상한 고백에도 나를 보는 시선이 구부러지지 않았던 막쾌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그 누구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기억은 말이다… 내가 동아리 악장이 되는 걸 반대했던 애인과의 싸움을 해결하지 못해 결국… 우리 둘이 공동악장을 하면 어떻겠냐고 동아리에서 투표까지 진행했던 일이다! 아, 지금도 적으면서 너무너무 부끄럽다… 둘로 나뉘어진 캠퍼스 때문에 이미 두 명의 악장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라 한 캠퍼스에서 공동악장이 탄생하면 악장이 셋이 되는 가당치도 않는 일이 벌어진다. 논의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몰표를 받았던 것 같다. 그뿐인가, 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동아리에 결정을 미루게 된 것도 참 못마땅하고, 서로 양보할 생각은 못했던 것도 매우 몹시 아주 창피하다.
내가 방금은 아주 강렬한 부끄러움을 바탕으로 옛 기억을 털어놓았지만, 막쾌에게 털어놓을 때는 호탕한 웃음을 컨셉으로 잡았다. 쿨해보이도록 말이다… 깔깔 웃으며, 정말 말도 안 된다며, 너무 부끄러워 속으로 꼭꼭 밟고 다지고만 있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막쾌도 같이 웃으며 “아아,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그때 그 일을 떠올려주었다. 직설적인 친구 G가 직설적으로 아주 별로라고 말했다고, 그거 때문에 더 침울해졌었다며 또 웃었다.
그런데 순간 막쾌가 “그때는 어렸고, 그래서 정말 독특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한 거야.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획기적인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렸을 때 어떤 사랑스러운 일을 저질렀었는지 속삭여주었다. 고등학교를 지나 넓은 세상으로 처음 나왔을 때 자기가 얼마나 서툴었는지 말해주었다.
막쾌는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부끄러웠던 기억을 귀엽고 특별한 기억으로 바꾸어주지. 막쾌의 말을 듣는 순간, 공동악장을 제안한 그 일은 어렸던 나만 떠올릴 수 있었던 아주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되었다. 우리가 보통의 사회적 기준과 약속을 몰랐거나, 그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기 있게 선택한 일들이었다. 그때보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따라할 수 없는 순진함과 귀여움이 보였다. 우린 정말 미숙했고, 사랑스러웠구나! 우리의 서투름이 얼마나 소중해보이던지.
애인과의 다툼은 우리 둘 다 한번씩 번갈아가며 악장을 맡는 것으로 끝났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둘 다 야망이 넘쳤던 인물들이었나봐. 둘 다 권력욕 때문에 서로가 악장으로 군림(?)하는 모습을 도저히 못 봐주겠다 싶었나? 그렇다면 참 욕망에 솔직한 시절이었다. 사랑이 권리인 줄 알고 서로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했던 우리는 정말 못 말리는 어린 애들이었구나. 어쩌면 공동악장을 하는 것이 가장 공평하고 동등한 해결 방안이라 믿었을 수도 있지. 아, 우리는 공명정대한 아이들이었구나!
어리다는 건 정말 축복이 맞나 보다. 아니, 서툰 모습도 축복이었나 보다. 아이들이 글을 배우면서 만들어내는 예쁘고 특별한 표현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만들어내는 획기적인 표현들을 전해들을 때처럼 종종 서투름은 경이로울 때가 있다. 사회화 바깥의 세상은 얼마나 창의적인지.
적응이란 삐죽삐죽했던 나만의 모습을 동그란 틀 안에 넣고 맞춰가는 과정이다. 툭 불거지고 튀는 부분은 사회적인 선과 부딪히고 깎였다. 난 다시는 공동리더 비스무리한 것도 시도하지 않겠지. 혹은 애인과 함께 일하지 않거나. 이제 나의 어떤 서투름은 깎이고 유실되어 찾을 수 없다.
서투름은 오직 그때만 머물렀다. 순식간에 지나쳐버리지. 갑자기 부끄러웠던 내 어린 모습이 귀하고 소중했다. 창피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지만, 한 구석에 치워두고 그 흑역사를 다독거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조금만 부끄러워하고 많이 귀여워해주려고 한다. 그때의 서툴고, 부족하고, 조금은 바보 같으면서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을 갸륵한 마음을. 이런 시각을 선물해준 막쾌가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