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야기

by 희량

7월 19일 평일의 습작이 누락되었다. 인스타그램에만 올리고 브런치 업로드는 까먹었나보다... 호옥시나 기다리셨던 분들게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늦게나마 업로드합니다. 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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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사랑니를 뽑았다. 사랑을 깨달을 무렵 솟는다는 사랑니인데, 그보다는 한참 나이 먹고 뽑았다. 이십대 후반이면 사랑도 알고 뭣도 알고 나름 인생 아는데, 사랑니 발치랑은 다소 안 어울리지. 그렇지 않나? (깝친 거라면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아무튼 느지막이 뽑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마저도 의사 선생님은 사랑니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좀 더 기다리자고 하셨지만, 나는 빨리 뽑고 싶다고 졸라대서 뽑았다. 왠지 아래 사랑니가 올라오면서 턱도 커지는 느낌이란 말이지(아무 관련 없다고 하더라).


사랑니는 괴담이 많아 두려운 대상이다. 대학병원 가서 뽑아야 한다, 사랑니 전문 치과에서 뽑아야 한다, 온오프라인에서 많은 조언이 들렸다. 그러나 내 선택지는 오직 하나! 굳이 청주까지 가서 뽑는 거였다. 중학교 시절의 이빨부터 성인 시절의 이빨까지 모두 담당해주신 의사 선생님한테 달려가는 거다. 15년 동안 드나든 동네 치과고, 본가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있다. 오랫동안 뵈온 만큼 그동안 선생님이 내 이빨을 최대한 살려서 오래오래 써먹을 수 있도록 애써오셨다는 걸 잘 안다.


15년이 넘도록 치과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치위생사 또는 간 분들도 매번 낯익다. 바뀐 게 있다면, 의사 선생님이 쓰시는 시스템이 회색빛의 윈도우에서 푸르른 윈도우XP로 바뀌고, 그게 또 윈도우11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치과에 들어설 때마다 기분이 요상하다. 예전엔 교복을 입고 문턱을 넘었는데, 이젠 대학마저 졸업했다니? 언제부터인가 치과에 엄카를 들고 오지 않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다.


의사 선생님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사랑니를 쑤욱 뽑아주셨다. 그렇게 많이 붓지도 않고, 엄청나게 아프지도 않았다. 친구들한테 엄살을 부리니 자기는 볼이 대빵 만하게 부었다며, 난 양호한 편이라고 그랬다. 흘러가는 시간만큼 의사 선생님의 사랑니 경력도 발전해온 것일까? 믿음직스러웠다. 이래서 동네 치과가 좋다. 세월로 증명한 신뢰와 경력!


뿐만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는 정겨움도 있다. 자주 본 건 아니지만 일년에 한두 번씩은 꼭 봐와서 그런지 의사 선생님도 나를 기억하는 듯하다. 시집 갔냐며… 이젠 그쯤 됐을 것 같다는 질문에는 오랫동안 봐왔다는 느낌이 묻어났다. 동생도 치과에 다녀오면 매번 의사 선생님이 자기 이빨 보고 감탄하신다며 웃어댄다. 볼 때마다 칭찬하신다고. 너무 예쁘고 고르게 나서 치과의사의 직업적 취향을 저격하는 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많이 한 탓에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을 부러워 했다. 경북과 전남과 강원을 거쳐 충북에 도착하고 서울로 유학을 왔으니 나름 전국팔도를 유람한 셈이다. 학창시절에 바삐 옮겨 다닌 거라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연락이 두절된 지 오래다. 그래서 한 동네에 오래 머물며 오랫동안 친구 사이를 이어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긴 공간을 자주 지나칠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 나는 차를 타고도 6시간은 달려야 초등학교를 볼 수 있는 걸. 물론 가물가물한 옛 친구들이 지금 뭐하고 살고 있을지, 우연히 마주치면 어떨지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긴 하다. 혹시 옥렬이 보고 있니?


그래도 치과 덕분에 이 정도면 나도 한 동네에 삶의 흔적을 많이 남긴 것 같다는 만족스러움이 다가온다. 그동안 동네의 모습이 쉴새없이 바뀌었지만, 굳건히 변하지 않는 곳들이 익숙한 정겨움을 도맡아주고 있다. 우리 가족의 이빨을 보살펴준 치과,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순두부찌개 식당, 우리 가족의 시야를 책임져주고 있는 안경 가게. 특히 이 안경 가게에서는 생일마다 손글씨가 담긴 축하카드와 안경닦이와 말린 미역을 봉투에 담아 보내준다. 작은 선물이지만 굉장히 따스하고 정답다.


오래 머문다는 것은 점차 편안함을 늘려가는 일이다. 익숙함은 곧 정겨움으로 승화한다. 마주치면 인사하고 다니던 이웃들은 모두 이사를 가고, 이제는 낯선 이웃들이 그 자리를 채웠지만 이 동네의 생김새는 변함없이 안정감을 준다. 아파트 언저리를 걷다 보면, 홍새킹이랑 교복을 입고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지혜랑 같이 맨날 지각해서 중학교 정문까지 달음박질하던 모습도 보인다. 바람을 타고 웃음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다. 언젠가 이 동네도 떠나게 되겠지만, 정겨운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몇천 년 뒤에 유적으로 발견될 만큼 고스란히… 고지대라 다행이다. 적어도 해수면 상승과 집중호우 침수로부터는 안전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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