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

by 희량

최근 내가 쓴 어떤 기획안에 대한 피드백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워드에 무수한 메모로 달린 첨예한 피드백이었다. 나는 기획안 내용은 구성할 줄 알아도, 상업적 감각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그 피드백은 유용함을 넘어서 절실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 한 일은 그 피드백을 한 글자씩 쓸어가며 음미하기는커녕… 제일 위에 달린 메모를 대충 훑어읽곤 파일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며칠 내내 묵혀두고 곁눈질로만 쳐다보다가 사흘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파일을 열었다. 내가 밍기적거린 이유는… 피드백이 무섭고도 감사해 그 양극의 감정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물론 본가라는 마법의 공간에 머물었기 때문도 있다.)


피드백에 대한 내 마음은 너무도 뚜렷하게 이중적인데, 매번 미친듯이 궁금해하고 갈망하면서도 막상 들으려면 두렵고 소심해진다. 이런 팽팽한 내적 갈등은 내가 잘하고 싶어하고 욕심내는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글이라든가, 해금 연주, 영어…


얼마 전에는 동아리 연습 때, 내 해금 연주가 도저히 마음에 차지 않았었는데 혹시나 신랄한 피드백이 들려올까 싶어 선수를 쳤다. “어우, 나는 매번 음정도 안 맞고, 박자도 안 맞고…” 나 다 알고 있으니까 지금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거, 말하지 말라고. 피드백을 비껴갈 수 있는 고도의 기법이다. 참고하진 마라. 타인의 조언을 피할수록 내 손해일 테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날 것의 피드백을 간절히 원하기도 한다. 토씨 하나까지 고스란히 듣고 싶었다. 가끔 스스로 도저히 판단할 수 없을 때가 있으니까. 아니, 가끔 말고 종종… 꽤나 자주… 이를 테면 내가 글을 잘 썼는지, 이런 문장 구성은 이해하기 쉬운지, 아니면 글의 흐름이 매번 똑같아서 지루하진 않을까. 해금 농현은 괜찮은지, 어떤 부분에서는 활질이 지나치게 세진 않은지, 어떤 음이 특히 흔들리는지… 차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어 아무것도 분명해보이지 않는 아득함이 참 갑갑할 때가 있다.


매번 이렇게 피드백에 귀를 열고도 닫고도 싶은 두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갈팡질팡 한다. 누군가는 피드백을 아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몹시 아까운데, 막상 그 봇물을 터트리기 위해 손을 뻗지는 못할 것 같다. 만약 내가 연못에 도끼를 빠트리면, 신선이 나타나 도끼질 피드백을 들을래, 말래? 하고 묻지 않을까. 둘 다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지 않아요 신선님… 어쩌면 좋을까요.


특히 내가 앙큼한 건, 긍정적인 피드백이든 부정적인 피드백이든 마음 속으로는 둘 다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척, 모든 피드백에 열려 있는 척, 온갖 쿨한 척은 다 하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객관적인 듯한 자기평가를 선수 쳐서 꺼내놓는 것도 일종의 컨셉이다… 피드백에 연연하는 쪼잔한 모습을 들키지 않도록.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 배포가 커보이잖아… 진짜 앙큼해.


하지만 답은 분명하고 또렷하다. 내 내면의 자아 중 가장 T 같은(이성적인/논리에 미친) 자아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냐며 고매한 선비처럼 꼿꼿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양파쿵야처럼 곧고 정직하고 광기 어린 눈빛으로, 피드백을 들어야 한다고… 듣지 않는 것이 도망치는 거라면, 듣는 것은 직면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답은 정해져 있다고. 다른 관점으로 나를 보고 정비해갈 수 있는 기회는 소중하다고. 알겠으니까 그만 쳐다보라고 말하고 싶은 느낌이다.


그래요… 이 자리를 빌려 선언합니다. 모든 피드백에 제 마음을 개방해보겠다고. 글도, 해금 연주도, 그냥 다! 다만, 자상하게 이야기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마구 던지면 우리 애는 겁이 많아 숨어요. 그리고 가끔 내가 각종 수법을 쓰며 쿨한 척 선수를 치면, 일단 귀엽게 봐준 다음에 피드백이라는 쿨몽둥이를 던져주세요. 나의 성장을 바라는 다정한 마음이 담긴 모든 조언을 감사히 여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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