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의 싸가지

by 희량

하나 고백할 것이 있다. 평소 구김 없는 친화력을 자랑하는 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높은 벽을 치는 경향이 있다. 이웃에게 살가운 편도 아니고, 살가운 사이를 바라지도 않는다. 사실 인사도 그렇게 반가이 하고 싶지도 않다. 좀 차가운 편인가?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다. 적당한 거리감과 무관심을 바탕으로 적당한 예의를 지켜가며 사는 게 더 편안하다. 도시에 적응한 요즘 애들은 다 나처럼 느낄까? 나도… 엠지의 전형이 되어가는 걸까?


싸가지 없는 도시인이 되어가는 나를 변호해보자면, 서울은 너무 빽빽하게 모여 살아서 일부러 이웃과 거리를 두려는 게 아닐지 의심해본다. 만원 지하철에서 필사적으로 서로의 얼굴을 외면하려 애쓰는 것처럼. 일인당 필요한 삶의 공간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생존 방법인 거지… 서울의 밀도는 숨 막히는 편이니까.


그것 말고도 한국인은 내집단과 외집단에 대한 구분이 강해서 처음 보는 사람과는 쉽게 대화를 트지 않는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스몰톡을 많이 하는 것도 내집단과 외집단에 대한 경계가 약해서 그렇다더라. 그러니까 우리는, 내 사람과 아닌 사람들을 철저히 구분하고 산다는 거다.


예전엔 스몰톡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적도 있다. 자유분방한 아메리칸 스타일이 멋져보였던 것도 있고, 내가 못 가져 본 넉살이 부러웠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지나가는 행인과 날씨 얘기하는 상상도 하곤 했었는데 왜 최근에는 인사도 주저하게 되고, 안면을 트는 것도 거북해하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내집단과 외집단의 경계를 굵고 진하게 긋고는, 익숙한 선 안으로만 숨는 나를 발견한다.


그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더 파고들어서 생각해보아야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전보다 좀 더 심해진 느낌이라,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다. 나도 모르는 나만의 이유가. 자초지종을 모르는데도 이 얘기를 꺼낸 건, 종종 주변사람들의 상냥한 모습을 볼 때 내 무심함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떵이가 버스 탈 때 기사님들한테 항상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는 함께 자랐지만 너는 나보다 훨씬 인사성이 밝은 어른이 되었구나! 그 상냥하고 유쾌한 인사가 참 다정해보여서 나도 인사 요정이 되어봐야겠다 다짐했었다. 버스 기사님은 스치듯 인사하고 들어가면 되니 그리 부담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같이 대학원 수업을 들은 B 언니는 지나가다 수업에서 본 사람을 만나면 아주 밝게 인사했다. 나도 친해지고 싶었던 분이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는 B 언니가 부러웠다. 나의 쭈뼛거림과 주저함이 매번 원망스럽다. 속으로 인사를 할까 말까 한다면 언제 할까 실컷 삐그덕거리다가 뻣뻣한 고개로 지나치고 말았을 때의 낭패감이란…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미화원 선생님들한테도 인사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숫기가 없어서 어째! 동아리의 누구처럼 목례라도 습관화해야 하나 싶다.


반성의 순간은 또 있다. 학교에는 교통 관리해주시느라 교차로에 상주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최근에는 큰 파라솔로 뙤약볕만 겨우 막고 무더위 속에 우뚝 서 계시는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는데… 막내쾌녀랑 같이 학교에 갔을 때, 밝게 인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반성했다. 난 살가운 인사 하나 건네지도 못하는데, 속으로만 잠깐 걱정하는 걸로 무얼 바꿀 수 있을까. 막내쾌녀의 인사는 1초라도 무더위로부터 그분의 신경을 빼앗을 수 있었겠지. 아… 그저 걱정만 하고 지나쳐버린 나는 소시민에 불과했다.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작으냐…(김수영 시에서 일부 발췌)


일단 내게 인사에 대한 욕구가 충만하다는 건 분명하다. 병원 안에 모든 사람과 인사하고 얘기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익준이처럼 어디 한번 내 구역을 섭렵하는 인사킹이 되어보자… 오늘 학교에 가면 교통 안내해주시는 분들한테 꼭 인사해야지. 싸가지 없는 젊은 도시인… 한번 살갑게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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