뜽귱과 만난 지 삼천일째가 되었다. 여전히 디데이를 손꼽아 기다리고 유난스레 기념한다는 것이 덜 컸다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우리 둘은 무언가를 축하하기 위해 둘이서 소소한 파티를 열고 호들갑 떠는 것을 매우 즐긴다. 여기서 파티란 생각보다 소박하다. 아무런 장식도 없고, 그저 정성스런 식사와 향기 좋은 와인으로 구성된다.
어떻게 8년이 넘도록 만났냐고 묻는다면, 그저 늙었다고 답하겠다. 시간이 흐른 것뿐이다. 물론 그 시간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얼마나 싸워댔는지! 우리는 동아리에서 만났는데, 동아리 사람들 보기 창피한 줄도 모르고 대놓고 싸워댔었다. 누가 보아도 싸우고, 안 보아도 싸우고, 우린 꽤 호전적인 연애를 했다. 서로 소중한 줄도 모르고 고함과 욕설을, 심지어 폭력까지 가했다… 뜽귱이 도망가서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얼마 전 뜽귱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The way I loved you’를 들려주었다. 원래 아는 곡이었지만, 뜽귱이 가사를 씹어삼켜야 이 곡이 완성된다며 가사를 한 문장 한 문장 해석해서 읽어주었다.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전혀 듣지 않는 버릇이 있다.) 나는 그의 무릎에 앉아 그의 목소리가 읊어주는 가사를 음미했다. 노래가 재생될수록 자꾸만 눈물이 흘러 나왔다. 정확하게는 가사를 이해할수록.
노래에는 he(그)와 you(너)라는 두 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내용을 미루어보아 그는 현 남친 같고 너는 전 남친 같다. 그는 완벽하다. 듣고 싶은 말은 모두 해주고, 서로의 공간을 존중해주고, 기다리게 하는 법이 없으며, 약속은 정확히 지키고, 부모님께 잘하며, 매력적이다. 그런데 테일러는 소리 지르고 싸우고 저주하고 슬픔에 무너졌던 너와의 연애가 그립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감정을 느껴보았다며. 지금의 그는 테일러가 웃음을 가장하는 걸 모른다. 테일러는 그한테는 가슴이 아프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롤러코스터 같았던 그때가 그립단다. 그게 널 사랑하는 방식이었다면서.
우리가 지나온 모습이 수두룩하게 떠올랐다. 새벽 두 시에 빗속에서 키스하는 거 빼고는 가사에 나온 모든 다툼을 다 해보았다. 우리의 연애가 다툼과 분노와 미움으로 점철되었던 건 너무나도 서로에게 진심이었기 때문인가봐. 아, 그러면 나는 치고 박고 싸운 내 연애를 뜨겁다 말하겠다. 우린 정말 불 같는 연애를 했어! 물론 그땐 참 어려서 감정을 잘 다독이고 모양새를 잡아 서로한테 예쁘게 보여주는 방법을 몰랐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때 모든 걸 다 바쳐 열정적으로 싸워낸 시간 덕분에 지금의 잔잔함이 완성되었음을 안다. 폭풍우가 여러 차례 뒤집고 지나간 바다는 고요한 것처럼. 불 같는 연애를 지나 물 같은 연애가 되었다. 물론 이 역시,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륜을 갖추었기 때문도 있지만…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불화와 균열이 현실에 질감을 부여한다고 했다. 어쩌면 싸움은 우리의 연애를 더 역동적이고, 강렬하게 만들어준 업적을 남겼을지도…
옛날의 다툼을 자세히 떠올리면 새삼스럽게 상처 받기도 한다. 우린 그 정도로 열심히 미워하고 화내고 상처주었다. 그러나 after all this time… 그 많은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새삼,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좋아했는지 보여.
나는 작년 내 생일에 선물로 커플 타투를 새겨달라고 요구했다. 당당도 하지. 영구적으로 피부에 남는 것인데… 보통 커플 타투를 지양하는 건 헤어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지만, 나한테 그 가능성 따윈 필요 없었다. 내 20대에 크게 자리한 뜽귱은 내 몸에 새길 가치가 있었다.
우린 여전히 싸운다. 앞으로도 싸울 것이다. 예전엔 “저희요? 한번도 싸운 적 없어요~”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연애가 부럽기도 했는데, 이제는 싸움을 빼놓고는 연애를 말할 수 없다고 반박하련다. 뜨거운 애정과 높은 기대는 강렬한 분노와 깊은 실망을 불러올 수밖에 없으니. 중요한 건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싸워서 싸움의 끝을 보는 것이다. 관계의 포기가 아닌 문제의 해결에 집중하면서. 우린 그렇게 사랑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