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성격유형검사 이야길 해보겠다. 여기서 각 유형을 설명할 순 없으니, 당신이 MBTI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쓰겠다.
내 MBTI는 ENFP(이하 엔뿌삐)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바뀐 적 없는 견고한 엔뿌삐다. 내가 봐도 엔뿌삐고, 누가 봐도 엔뿌삐인 정말 엔뿌삐의 전형이다. 내가 엔뿌삐가 아니면 누가 엔뿌삐겠어? ^o^
엔뿌삐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있다. '대가리 꽃밭'. 어떻게 생각하면 모욕적인 표현일 수 있으나, 솔직히 마음에 든다. 정확한 묘사라고 생각한다. 난 실제로 안 좋은 건 금방 잊고, 좋은 것만 쏙쏙 골라 기억하고, 좋아하는 건 엄청 많이 좋아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지난한 일상보다 낙관적인 미래에 주목하고 기대하니까! 행복을 느껴도 크게 느끼고, 그걸 꼭 굉장히 행복하다고 입 밖으로 꺼내야만 하니까!
다들 이렇게 스스로의 엠비티아이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니까 유행이 가능했던 것이라 본다. 그래서 엠비티아이는 타인을 가늠하고 이해하는 데 쉽고 가시적인 기준이 되어준다. 물론 수십억 명의 사람을 어떻게 열여섯 가지 기준에 우겨넣겠냐마는. 이건 일종의 일반화이고, 사람을 편평하게 만들며, 꾸준히 변화하는 성격의 찰나를 포착했을 뿐이란 걸 알지만… 나는 꽤나 과몰입하는 편이다.
엠비티아이의 유행이 반가운 이유가 있다. 엠비티아이 이후로 더 이상 성격의 잘나고 못남을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독한 시간을 바라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 사교적이라고 잘난 것도 아니다.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게 옳은 것도 아니고,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물론 이런 단어 하나로 각 성격 유형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특히 감정이 온몸을 지배하는 나 같은 사람은 ‘티발 너 씨야?’ 소리에 쾌감을 느낀다. 난 이성적이고 냉정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 앞에서는 항상 움츠려들었는데. 내 미약한 논리와 감정에 흔들리는 얄팍한 판단력을 부끄럽다 생각했는데. 티발놈이라니. 이 사람들이 언제 이렇게 업신여겨지겠어? 지나친 비속어 같아서 미안하지만 솔직히 너무 짜릿해.
또 내가 제일 실감하는 건 외향과 내향의 차이다. 학창시절엔 외향과 내성이 공존하는 성격 때문에, 속으로 끙끙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내성적인 내 모습이 미워서 없애버리고 싶어했고, 동시에 외향성을 극대화시키고 싶어했다. 소심하고 조용한 사람은 되지 않으려 애썼고, 밝고 활발해서 주변에 친구들이 득시글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외향성만이 삶의 정답인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요즘엔 I라는 알파벳 하나로 내향성을 설명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시대다. 외향만 추구했던 나는 이제 내향성에 당당한 그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에 둘러싸이는 것에 관심이 없고, 혼자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삶의 방향이 안으로 향한다는 것은 그 안쪽을 정비할 줄 안다는 뜻이 아닐까. 내면을 다진 사람의 어떤 단단함이 부러웠다. 나는 내가 보여지는 모습에 신경 쓰느라 속은 비어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꾸미느라 정작 자신감을 못 채웠고, 겉모습을 정돈하느라 집은 어수선했다.
그러나 나는 의심의 여지 없이 외향적인 사람이 맞다. 좀 내성적이어서 그렇지, 나는 항상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에너지를 얻고, 생각과 감정의 표출을 지향한다. 입맛도 사람와 함께여야만 돈다. 그렇다면 내 할 일은 외향과 내성의 공존을 수용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성적이어서 이 정도만큼은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걸지도 모른다. 외성적이고 외향적이었다면 내면을 돌보기 더 힘들었을지도 몰라!
엠비티아이가 엠지를 휩쓴 지 오래라 이제 슬슬 지겨워지기도 하는데, 우리한테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서로 다른 성격의 공존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걸음일 것이다. 서로 성격을 유추하며 깔깔거리는 재미도 크고! 물론 부분으로 전체를 재단하려는 오류는 경계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