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는

by 희량

맨날 서울 싫다, 벗어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뭣하러 이렇게 낑겨 사냐면서. 나도 낑겨 사는 한 사람이면서 언젠가는 꼭 서울을 탈출하고 말 거라는 말로 흔한 서울 피플과는 다름을 어필했다. 그치만 지방 출신이 서울에 한 자리 비집고 들어오겠다고 임대인과 지지고 볶고, 어엿하게 먹고 살겠다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끼워넣다며보면 어느새 진한 회의감이 찾아온다. 무슨 부귀영화를 위해 이 정 없고 분주한 도시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느냐고.


그래놓고 서울과 차로 4시간 떨어진 지역의 CGV를 바라보는데, 순간 서울 CGV가 몹시 그리워졌다. 저기에 어떻게 영화관이 들어가있냐며 되묻고 싶은 작은 건물과 허름한 입구…

“애걔걔…”

실망스러운 추임새가 튀어나왔다. 순간 깨달았다. 나는 서울에 뼛속까지 물들어 있구나. 그렇게 탈출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음에도 8년째 머무르는 서울에 완전하게 적응해있구나. 서울의 생활양식은 이미 내 삶을 점령했고, 내 취향과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도시적인 것을 넘어 서울적이었다. 이 간사하고 이중적인 사람을 어쩌지.


한국의 중심에 있다는 특혜. 이건 참 포기하기 쉽지 않다. 지방보다 더 뜨겁고 빽빽하고 답답하고 시끄럽고 불쾌한 서울이지만... 서울이 주는 혜택은 중독적이다. 인간의 편리를 위한 모든 게 크고 그럴싸하게 준비되어 있다. 무엇이든 도보 15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고밀도의 생활 인프라, 대중교통 1시간 안에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문화 인프라, 그리고 나를 서울에 오게 만든 교육 인프라, 나를 서울에 머물게 만든 고용 인프라…


무서운 집중이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떠올라도, 누가 서울의 중력을 해체할 수 있을까? 서울은 끊임없이 무거워지기만 한다.


하루는 친구한테 왕십리에서는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왜?”

“왕십리역은 지하철 4개가 지나가. 뭐 새로 뚫리면 5개도 지나간대.”

“그게 왜?”

“땅 밑에 구멍이 그렇게 많이 뚫려서 지상의 무게를 버틸 수 있겠어?”

친구는 웃었다. 이과가 들으면 바보 같은 질문이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가끔 구멍이 송송 뚫린 서울의 땅 밑을 생각하면 조금 소름이 돌았다. 멈출 줄 모르는 끝없는 개발에 위화감이 들었다. 언제쯤 멈출까? 멈춰지긴 할까? 저렇게 끝없이 뚫어대다 정말로 서울의 빌딩숲을 받칠 땅이 없어지면 어떡해.


서울이 무서워질 때면 서울이 알려준 속도를 포기하고 싶다. 내가 서울에 내린 뿌리는 이제 꽤나 깊고 두꺼워졌지만, 언젠가는 꼭 뽑아내고 싶다. 도시는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서울의 극단적 밀도만큼은 벗어나 숨통이 트이는 공간에서 머물길 바란다. 가장 발전된 것을 가장 먼저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길 바란다.


지방 도시도 편리는 충분하고, 꼭 극단의 편리를 추구해야만 하나 싶다. 지방 도시 터미널에 내리는 순간 느껴지는 공기의 느린 흐름에 푹 젖어버리고 싶다.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씩씩하게 이어가는 삶으로 보람을 느끼고 싶다.


서울의 묵직한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엄청 큰 힘을 주어야 하겠지만, 언젠가, 꼭 시도해봐야지. 서울의 색에 물들 대로 물들어버린 나는 새로운 물을 들이느라 통증도 겪어야 하겠지만, 얼마든지! 호기롭게 감당해보겠다.


가수 오지은의 노래 ‘서울살이는’으로 마무리한다.

“서울살이는 결국엔 어려워서 계속 이렇게 울다가 웃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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